[까톡 2030] 좋은 끝맺음 배우는 청춘

젊은이 대상 교육 수강문의 늘어… 노인들 주로 찾던 세태 변화

친구 등 가까운 사람 죽음 계기로 행복한 마지막 일찍부터 고민

"죽음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 삶의 질만큼 떠나는 순간도 중요"

죽음은 노년만의 문제일 까. 혹은 불치의 병에 걸린 말기환자만의 문제일까. 천수를 누리든 요절을 하든,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많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죽음(자살이 아니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젊은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별히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이 되어서가 아니다.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려는 ‘웰다잉’ (Well-Dying)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2030들도 ‘언제 죽느냐’보다는 ‘어떻게 죽느냐’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과연 젊은 이들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나는 왜 죽음을 고민하게 되었나

임은비(24ㆍ동국대 대학원생)

올 초 대학시절 몸 담았던 밴드 동아리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밴드 동아리를 하며 친하게 지냈던 오빠의 상(喪)을 알리는 전화였다. 귀가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평소 좀 더 살갑게 대할 걸, 졸업 후 좀 더 자주 만날 걸 하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붙잡을 수 없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아리방에서 매일 보던 오빠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허탈했다. 열심히 공부해 사회에 멋지게 진출하려 했던 목표들은 한 순간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산다는 건 뭐고 이렇게 살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오빠의 나이는 스물 여덟. 대학 졸업 후 카이스트(KAIST) 대학원에 진학해 로봇 개발자를 꿈꾸던 전도유망한 공대생이었다.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이 아무 의미 없게만 느껴질 거 같았다.

고민이 시작됐다. 죽음은 어떤 것이고,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지인의 죽음은 나로 하여금 관심 가지지 않았던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사는 것만 문제라고 생각했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던 나를 돌아봤다.

아직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죽음에 대해 공부해가는 단계다. 학교 홈페이지에 뜬 웰다잉 강좌 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어 신청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강의를 통해 나에게도 분명히 닥칠 죽음에 대해 좀 더 알아가 보고 싶다.

고한범(24ㆍ한국폴리텍대 의료정보학과 1학년)

5년 전부터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던 외할아버지가 2주 전 돌아가셨다. 수술을 받으시고 경과가 좋아지나 했는데 병이 재발하면서 84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했다. 같이 살진 않았지만 외갓집의 큰 손주였던 나를 유독 아껴주셨던 각별한 분이다.

유품을 정리하다 할아버지가 쓰신 일기장을 발견했다. ‘살 날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병을 앓으신 후 할아버지가 쓰는 일기 끝에는 이런 문구가 반복되고 있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다.

마음 아픈 내용도 있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프다는 이유로 화를 낸 내 자신이 너무 싫다.’ 명절에 삼촌과 다툼이 있어 속상하셨는지 할머니에게 화풀이를 하셨는데 자신의 간병만으로도 힘든 할머니에게 화를 냈다며 후회하시는 모습이었다. 몸이 아프셔서 평소보다 짜증낼 때가 많지만 여생 동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듯 했다.

할아버지의 일기장은 나를 돌아보게 했다. 의학용어 외우기에 하루하루 바빴던 날들이었다. 언제 올 지 모를 죽음에 대해 대비가 필요했지만 전혀 준비 돼 있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피할 수 없다면 삶을 마무리하는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어도 가는 데에는 순서 없다’는 말처럼 누구든 언제 삶을 마감할 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잇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최대한 하지 않고 배려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부터 하려 한다. 앞으로 달라질 내 모습이 기대된다.

가까이서 본 죽음

박지영(37 · 신촌세브란스병원 간호사)

“죽음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현재 삶에서 중요한 게 뭔지 되돌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죽음은 임박해서만 마주해야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만난 박지영(37) 간호사는 많게는 한 달에 10명이 넘는 암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생각을 털어놓았다. 완화의료센터는 암 치료과정 중 생기는 환자의 신체적 고통과 우울, 불안 등 심리적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환자와 의료진 간의 소통을 돕고 음악치료ㆍ미술치료ㆍ마사지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곳이다.

10년 차 박 간호사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된 건 본격적으로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한 3~4년 전부터다. 환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그들의 마지막을 가까이서 함께 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겪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삶이 일주일 정도 밖에는 남지 않은 33살 남성환자를 만났다. 7년 사귄 여자친구에게는 애틋한 연인이었고, 자녀가 형제뿐인 부모에게는 딸 같은 아들이었다. 충격이 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던 가족들에게 의료진은 언약식을 제안했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언약식이 치러졌다.

환자는 눈 앞에 흐려진다면서도 여자친구에게 평소 즐겨 먹던 까르보나라를 직접 떠먹여 줬고, 아버지에게는 소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고 했다. 산소포화도가 40%까지 떨어졌지만 그는 하나씩 묵묵히 해냈다. 보통은 산소포화도가 80% 이하로만 떨어져도 눈을 뜨고 있을 수 없고 숨이 차 임종을 맞이한다. 축가를 부르는 가족들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렀다.

올 초 1년 간 봐 왔던 30대 폐암 환자를 떠나 보낸 일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또래라서 친구처럼 지낸데다 똑같이 아이들 둔 엄마로서 마음이 더 갔다. 임종을 목전에 두고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환자의 아들이 ‘엄마 1년만 더 살다 가면 안 되느냐’고 조르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박 간호사는 “죽음을 앞둔 시간과 마주하면 1분 1초가 아깝다”며 “의미 없이 100살, 150살까지 사는 것보다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남은 삶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박 간호사는 지난해부터 연 단위로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목록)를 만들어 실천 중에 있다. 지난해에는 일과 공부에 매진하느라 소홀했던 남편에게 동영상을 만들어 생일 이벤트를 해줬고 ‘리마인드 웨딩’을 올렸다. 올해에는 가족과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매달 가족여행을 가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는 “마지막을 염두에 두면 더 보람되게 살 수 있다”며 “젊을수록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거니까 아름다운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2030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웰다잉 강좌를 듣기 위해 모인 대학생들이 21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 강당에서 6주에 걸쳐 진행 될 강의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30들을 위해 마련된 강의였지만 참여를 간절히 원해 참석한 일부 노인들도 눈에 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나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 강당에는 2030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웰다잉 준비 교육과정을 듣기 위해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모였다. 수강생 정원은 50명이었지만 수강 문의가 폭주했다. 노인들의 문제로만 치부됐던 웰다잉이 젊은 세대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죽음과 남은 삶에 대한 고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조언한다. 실제 2009년 대한간호학회지에 실린‘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대학생의 삶의 만족도와 죽음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총 5주에 걸쳐 죽음준비교육을 받은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총 44명(실험군 22명ㆍ대조군 22명)을 대상으로 삶의 만족도를 측정한 결과 교육을 받은 실험군은 그렇지 않은 대조군보다 만족도가 유의하게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웰다잉 교육이 대학생들에게 삶의 가치와 자아 가치를 인식하게 하고, 현재를 좀 더 충실히 살아가도록 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30을 위한 웰다잉 프로그램을 마련한 최영순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젊은세대에게 웰다잉 교육은 보다 폭넓게 사고하게 하고 남은 삶을 알차게 보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삶의 질뿐만 아니라 죽음의 질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됐음 한다”고 말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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