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 반대급부용

청년고용 확대로 직결된다 장담 못해

재계, 공적책임 분담 자세 분명히 해야

정부가 청년일자리 부족 해소를 위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제도의 적절성을 놓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는 베이비붐 세대의 막내쯤 됩니다. 요즘 제 또래들의 대화 주제는 늘 한가지입니다. 자신의 은퇴와 자식 세대의 취업 문제 말입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에코 세대의 고용 문제가 동일 이슈로 묶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노동 유연성이 확대되고 임금피크제가 실시되면 빈 자리와 남는 임금만큼 청년고용이 늘어난다는 정부와 기업의 설파 때문이지요. 에코 세대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하시나요.

제 세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이 불가피하다면 수용하겠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요. 자신의 희생이 자식 세대에 등가 전이되리라는 믿음이 없는 거죠. 정부는 정규직이 양보하고 희생해야 청년고용 문제가 풀린다는 ‘임금피크제=청년고용 확대’를 거듭 강조합니다. 정말 이 등식이 성립할까요.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기업의 고용부담이 증가합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정부에 요구했죠. 해고를 쉽게 할 수 있게 해주고, 임금이 정점에 다다른 이후 정년 때까지 임금을 줄여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달라고요. 즉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에 따른 비용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해 도입하려던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고용 문제해결이 최대 현안이 되자 임금피크제가 돌연 청년고용 확대의 만능키로 변했습니다. 기업들은 임금피크제가 도입되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18만개(어떤 재계 단체는 2020년까지 31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예상수치까지 제시했죠. 하지만 이런 논리 확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정년은 대개 55세~58세입니다. 그런데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입니다. 정년 이전에 조기 퇴직한 근로자 비율은 67.1%나 됩니다. 한 취업포털 조사에 따르면 민간 기업 직원의 퇴직은 48세~51세에 몰려 있습니다. 임원이 된 후 1년 만에 쫓겨나고, 선후배 눈총 때문에 조기 퇴직하는 사례는 흔한 현상입니다. 정년제도는 무용지물인 셈이죠.

상황이 이런데 임금피크제가 시행되기만 하면 갑자기 전 기업이 정년 60세 룰을 준수하고, 없던 고용확대 재원이 불쑥 생겨난다고 할 수 있을까요. 18만개, 31만개 일자리 창출은 전체 근로자의 60세 근무를 전제로 한 것인데 이 수치의 상당부분은 허구 아닐까요. 지금이라도 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청년고용 확대는 가능한 것 아닌가요. 여기에 근로자 해고가 더 쉬워지면 근로자들은 정년 전 퇴출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임금도 깍이는 이중 피해를 입지 않을까요. 이러니 정부와 기업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불안이 커지는 겁니다.

무엇보다 해고를 쉽게 하고 임금피크제까지 도입해서 절감한 비용을 기업이 고스란히 신규 채용 확대에 쓴다는 것을 누가,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그 태생적 속성상, 선한 집단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기업은 존재와 영속을 위해 부단히 수익을 내야 합니다. 비용 절감은 매출 확대와 함께 기업 이익창출의 양대 축입니다. 기업들은 2, 3차 하청에 파견근로 등의 형태로 꾸준히 임금비용을 줄여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 임금근로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임금피크제의 대가로 확보한 재원을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늘리는데 사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까요. 정부는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저 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요. 그 지점이, 기업 생리를 잘 아는 베이비붐 세대로서는 미덥지 않은 겁니다.

임금피크제는 임시 방편입니다. 청년고용 문제는 단순 대증요법으로 풀리지 않습니다. 한 일방의 양보와 희생만으로 해결할 수도 없지요. 노사정 모두 각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노동계의 양보와 희생이 요구되듯 기업도 청년고용 확대를 보장하고 약속해야 합니다. 책임을 공정하게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죠.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 복귀를 결정했습니다. 에코 세대 여러분도 노사정 대화참여를 요청하세요. 그 자리에서 노동계와 기업을 향해 확실한 고통 분담과 책임 이행의 보장을 요구하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권리입니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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