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권력 관계 우월성 확인하며 상대 굴복시키려는 콤플렉스 작용

여성은 상대방에 대한 경쟁심리 탓,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주려는 의도

남성이 남성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동성 간 성희롱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기 동성 간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사진은 영화 '후회하지 않아'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야! 오늘 기분이다. 노래방에 남자 밖에 없으니 신나게 놀자. 다들 바지 벗어!”(남성이 남성에 가한 성희롱)

“강주임, 신혼여행 잘 다녀왔어? 남편하고 어떻게 했어? 구체적으로 말 좀 해봐. 힘들었나봐. 살이 좀 빠진 것 같아.”(여성이 여성에게 가한 성희롱)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동성 간 성희롱 진정사례들이다. 사실 성희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종 성희롱 사건 중에서도 남성이 남성에게,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동성 간 성희롱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발생이 더 잦고 정도도 심한 데다 초중고 등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순서 매기기 등 목적으로 동성 성희롱이 일상처럼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 간 성희롱 발생을 추동하는 이유는 뭘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남성은 권력관계 우월성 확인을 위해, 여성은 질투와 콤플렉스에 의해 동성에게 성희롱을 가한다고 진단한다. 박한선 성안드레아 신경정신병원 과장은 “남성의 경우 권력관계를 이용해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만 허용되는 성적 농담이나 행위를 강요한다”면서 “성희롱을 가하는 인간의 내면에는 권력의 위세를 이용해 상대를 굴복시키고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려는 권력 콤플렉스가 깔려 있다”고 했다.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희롱은 인류 문화적으로도 확인된다. 박한선 과장은 “침팬지를 살펴보면 권력을 가진 알파 수컷이 다른 수컷에게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굴욕적인 자세를 강요하는 행동이 관찰됐다”면서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희롱은 동성애처럼 직접적인 성적 만족을 취하려는 것보다 권력관계를 명확하게 하려는 목적이 강하다”고 했다.

남성이 남성에게 가하는 성희롱이나 성폭력은 감옥, 수용소 등 사회와 유리된 공간에서 발생하기 쉽다. 1971년 스탠포드대학에서 ‘감옥 실험’을 실시한 결과, 임의로 교도관 역할을 맡은 피험자가 수형자 역할을 한 피험자에게 다양한 형태의 성희롱을 가했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피험자는 이런 행동이 질서를 지키고 권위를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진술했다.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는 미군이 이라크 포로에 대해 실험결과와 일치하는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동성 간 발생하는 가학적 성추행이나 성희롱은 감시 받지 않는 권력구조 하에서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성적매력 등 경쟁상대에 수치심 안기기

여성이 여성에게 성희롱을 가하는 이유는 복잡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우선적으로 콤플렉스를 꼽는다. 상대 여성이 비록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나 나이가 어리지만 성적매력을 갖고 있거나 자신이 요구한 것을 거절하는 등 상처를 받은 경험 때문에 상대방을 벌하고 수치심을 안기기 위해 성희롱을 가한다. 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이 여성을 상대로 성희롱을 가하는 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경쟁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상대여성을 흠집 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성적 문제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인데 상대여성을 성희롱 한 가해자는 문제를 인식하지 못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장 3년차인 정수희(29ㆍ가명)씨는 1년 전부터 직속상관인 권경애(43ㆍ가명) 부장에게 성적 모욕을 받았다. 5분만 지각 해도 “남자 친구와 어젯밤에 얼마나 놀았으면 지각을 하느냐”고 꾸중을 듣었고, 몸이 아파 조퇴 하려고 하면 “남자친구랑 놀러 가려 하는 것 아니냐”는 다그침을 받았다. 여 상사는 여성 직원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여자는 성적으로 문란하면 안 된다”면서 정씨를 지긋이 쳐다봤다. 처음에는 “권 부장이 너무 심한 거 아냐”라며 정씨를 옹호하던 직장 선후배 여성들마저 “좀 잘해라. 오죽하면 권 부장이 그럴까”라면서 자신을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취급했다. 충격을 받은 정씨는 올 초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식으로 진정을 신청했다. 임현국 성빈센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동성 간 성희롱을 가하는 이들은 언어 등 폭력성이 없이는 상대에게 자신이 무시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런 사람일수록 폭력을 통해 상대방을 독점하고 제어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성희롱을 저지른다”고 했다.

‘마초’심리에다 여성 폄하 속성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상대적으로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성희롱보다, 남성이 남성을 상대로 성희롱을 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이수정 부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남성이 남성을 성희롱 할 경우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세하다는 것을 나타냄과 함께 피해자를 여성에 비견함으로써 여성을 폄하하는 행동을 동시에 보인다”고 지적했다. 임현국 교수는 “남성에게 강요되는 ‘마초’ 이미지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반대되는 여성적인 남성을 벌하고 그들에게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강요하기 위해 성희롱을 저지른다”고 했다.

실제로 2012년부터 올 7월말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동성 간 성희롱 건수를 살펴보면, 남성이 남성을 성희롱 한 건수는 2012년 12건, 2013년 13건, 2014년 12건, 올 6건(7월 현재)이 각각 발생했다. 이에 비해 여성이 여성을 성희롱을 가한 건수는 2012년 4건, 2013년 7건, 2014년 10건, 올 4건(7월 현재)으로 더 적었다. 최준석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팀 조사관은 “실제 통계는 미비하지만 동성 간 성희롱 관련 상담사례는 증가하고 있다”면서 “개인적, 사회적 불이익은 물론 직장 내에서 2차 피해가 우려돼 동성 간 성희롱을 고발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위원회에서는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동성 간 성희롱이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낙인효과’를 지목한다. 홍나래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신은 성희롱으로 여겨 모욕을 느꼈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심할 수밖에 없다”면서 “용기를 내 직장이나 기관에 진정을 내면 성희롱을 한 사람이 아닌 자신이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내몰리는 낙인효과로 2차 피해를 보게 돼 문제”라고 했다. 최준석 조사관은 “용기를 내 진정을 한 후 직장 내에서 낙인이 찍혀 중도에 진정을 포기한 사람이 많다”면서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직장 내에서 동성 간 성희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소아청소년기 동성 간 성희롱 빈번

소아청소년 시기 발생하는 동성 간 성희롱도 문제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성보다 동성에게 친숙한 소아청소년기에 동성 간 성희롱 문제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박한선 과장은 “임상에서 소아청소년 환자들 사이에서 동성 간 성희롱이 많이 발생한다”면서 “순위 정하기 등 자기들만의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해 종종 동성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발생하는데 동성 간 성희롱은 제한된 환경에서 취약한 대상에게 복종적 위치를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수정 교수는 “청소년기에 지속적으로 성희롱에 노출되면 성 정체성, 성적취향의 혼란이 초래된다”면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성희롱에 노출되면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된다”고 했다.

지속적 성희롱 노출 시 자살까지 생각

지속적으로 동성에게 성희롱을 당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동성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하면 무력감, 절망감, 수치감으로 인해 우울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현국 교수는 “우울장애로 발전하면 식욕저하는 물론 의욕저하로 인해 자살을 시도할 수 있다”고 했다. 조철현 교수는 “성희롱을 경험하게 되면 처음에는 불면에 시달리게 되고, 회사에 가려고만 해도 가슴이 뛰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증세가 발생한다”고 했다. 박한선 과장은 “심각한 수준의 성희롱을 당하거나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준하는 정신증상이 발생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성희롱 판단기준이 되는 성적언동

1. 육체적 행위

- 입맞춤이나 포옹, 뒤에서 껴안는 등 신체적 접촉 행위

- 가슴, 엉덩이 등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행위

- 안마나 애무를 강요하는 행위

2. 언어적 행위

- 음란한 농담을 하거나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행위(전화통화 포함)

-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하는 행위

- 성적인 사실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 성적인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 회식자리 등에서 무리하게 옆에 앉혀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

3. 시각적 행위

- 음란한 사진 그림 낙서 출판물 등을 제시하거나 보여주는 행위

- 성과 관련된 자신의 특정 신체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행위

4. 기타

그밖에 사회 통념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언어나 행동

자료출처 :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성희롱을 당했다면?

성희롱을 당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성희롱 행위에 대처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가해자에게 받은 문자나 이메일 등은 반드시 남겨놔야 하고, 상황이 발생한 당시의 구체적인 내용(장소, 날짜 및 시간, 관련된 사람, 대화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사건 발생 후 가해자와의 대화를 녹취하거나 목격자가 있을 경우 증언을 확보해야 한다. 외상이나 정신적 상해에 대한 진료기록을 남겨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성희롱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경우 전화(국번 없이 1331번), 우편, 팩스,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거나 직접 방문을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이 접수되면 조사를 통해 성희롱 여부가 판단되고, 성희롱으로 판단될 경우 성희롱 행위자와 소속기관에 손해배상이나 인권교육 등을 권고하게 된다. 최준석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조사과 조사관은 “조사를 통해 성희롱으로 판단되면 가해자의 경우 인터넷 등을 통해 14시간 성희롱 기본교육을 받은 후 위원회에 출석해 4~6시간 동안 일대일로 성희롱특별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성희롱이 정도가 심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희롱이 발생한 기관이나 기업에 가해자의 징계를 권고한다. 만약 성희롱 행위가 성폭력특별법이나 형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할 경우 가해자를 형사 고소할 수 있다. 만약 일반사업장에서 성희롱이 발생했는데 회사차원에서 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성희롱 피해 사실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할 경우에는 지방노동행정기관(지방노동청 및 지방노동지청)에 진정 또는 고소할 수 있다.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적, 경제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성희롱 피해자는 사업주와 성희롱 행위자를 상대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은 것과 관련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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