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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한ㆍ일 합작, ‘삼부자 막장 롯데시네마 1막’ 속의 추한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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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한ㆍ일 합작, ‘삼부자 막장 롯데시네마 1막’ 속의 추한 현실은

입력
2015.08.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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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블록버스터급입니다. 언론에선 실시간 속보를 쏟아내고 다음 편 예고까지 친절하게 전해줍니다. 관계당국은 물론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건국 이래, 그것도 한ㆍ일 합작품이 이처럼 한 달 넘게 흥행을 불러 일으킨 작품도 드물어 보입니다. 아버지와 장ㆍ차남 등이 동반 출연하면서 진흙탕 경영권 쟁탈전을 소재로 구성된 이 대작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면서 제작됐습니다. 다름 아닌 ‘삼부자 막장 롯데시네마’ 이야기입니다. 장남(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100세를 눈 앞에 둔 고령의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와 손잡고 차남(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맞섰다는 게 주된 줄거리입니다. 이 난타전은 지난 17일 일본에서 열렸던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1막을 내렸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주인공으로 등장한 삼부자의 웃지 못할 행보 때문입니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일단, 장남은 한결같이 아버지에게만 매달립니다. 장자인 자신에게 그룹 후계자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은 오직 아버지의 의중 때문이랍니다. 21세기인 현재,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차기 경영권이 그 옛날 왕위 세습 때나 이뤄졌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정돼야 한다는 고집이 1막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부친 서명 인사 지시서와 동영상도 증거로 공개합니다. 구체적인 실적 제시와 같은 자신의 검증된 경영 능력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장남의 상식 밖 행동은 여기서 그친 게 아닙니다. 1조원대 사업 손실 때문에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뺨을 맞았다, 심지어 ‘교도소로 (동생을) 보내라’는 아버지가 했다는 식의 원색적인 폭로도 서슴지 않습니다. 조연으로 출연한 작은아버지(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도 힘을 보탭니다. “마땅히 장남이 경영권을 물려 받아야 한다”며 “한국어는 모르지만 (장남은) 한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라며 치켜세운 작은 아버지의 공개 발언에 더해진 장남의 일본어 방송 인터뷰는 ‘롯데=일본기업’이란 부정적 이미지만 고착시킨 자살골로 기록됐습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주주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7일 오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주주총회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승자로 보이는 차남의 행보도 미심쩍은 구석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차남은 공정한 절차에 따른 열린경영을 내세워 장남의 공세를 잠재우고 차기 후계구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뒷맛은 여전히 개운 치 않습니다. 우선, 1막에서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던 지난 17일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그렇게 많은 언론을 따돌리면서까지 비밀스럽게 처리했어야 했는 지 의문입니다. 그것도 불과 20분만에 말이죠. 장남과의 표대결에서도 승산이 있다고 강조해왔던 만큼, 자신 있게 열린 공간에서 마무리했으면 이처럼 불필요한 오해는 없었을 텐데요. 주총 장소와 시간도 모른다던 차남 측에선 주총이 끝나기가 무섭게 표대결에서 완승했다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했으니, 모든 일을 성급하게 마무리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지나친 언론의 관심이 주총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게 이유였지만, 이미 이사회까지 장악한 상황이었기에 의구심은 더해졌습니다.

아버지의 건강을 상황에 따라 바꿔 활용하는 듯한 모습 또한 계산적이란 시각이 많습니다. 차남측은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되기 직전만 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서울 잠실의 제2롯데월드몰 현장을 직접 찾을 만큼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장남이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공세를 강화해 오자, 장남이 고령인 아버지의 흐려진 판단력을 악용하고 있다는 내용을 언론에 흘렸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츠하이머 치료까지 받고 있다는 소식도 함께 말이죠.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달 28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지난 달 28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작품에선 아버지 또한 무시 못할 존재입니다. 사실, 이 작품의 시나리오는 아버지가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초고령에도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그릇된 과욕이 이 작품의 시작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마무리 지었어야 할 후계구도 작업을 아흔이 훌쩍 넘어선 지금까지도 미루면서 오늘날 두 아들의 비극을 자초한 꼴이니까요. 여전히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으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이 그룹은 두 아들의 경영권 다툼으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패하고 돌아온 장남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재반격에 필요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벌써부터 조만간 개봉될 ‘삼부자 막장 롯데시네마 2막’이 궁금해집니다. 허재경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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