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맥아더, 美 국익 위해서 책임 묻어

"역사학자 입장선 천황이 맞는 표현… 폐하 극존칭은 친일적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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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우 교수는 "일본이 갖고 있는 민족적 우월감과 왜곡된 역사의식의 뿌리에는 천황제가 있다"고 말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일왕(日王) 대신 천황(天皇)으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역사학자 입장에선 일본 역사에서 만들어진 고유명사를 쓴다고 해서 민족적 자존심이 상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박진우(59) 숙명여대 교수는 11일 한국일보와 만나 “일왕이라는 표현을 굳이 만들어 쓸 필요는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 교수는 대신 외교에서 ‘폐하’라는 극존칭을 쓰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씨가 일본을 방문해 ‘천황폐하’라고 부른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일본에서도 천황제에 비판적인 사람은 일본어 발음인 ‘덴노’라고만 합니다. 한국인이 ‘천황폐하’라고 하는 건 친일적인 발언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친일파임을 대놓고 고백한 것이지요.”

25일 서울 필운동 푸른역사아카데미 강당에서 ‘천황의 전쟁책임-왜곡된 역사인식의 뿌리’라는 주제로 강연하는 박 교수는 “전쟁의 1차적 책임이 천황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아직까지도 천황의 전쟁 책임을 봉인, 은폐하고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황이 상징적인 존재일 뿐 정치적 권력을 갖고 있지 않는 지금과 달리 전쟁 중엔 천황을 신격화하고 맹목적으로 따랐기 때문에 천황에게 전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지배, 전쟁의 최고 책임자가 천황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국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천황을 신격화했고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인식을 내면화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일본 국민들은 신의 뜻이라는 믿음에 따라 전쟁에 참여해 온갖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고, 천황이 제사를 지내는 야스쿠니신사에 묻힐 수 있다는 생각에 군인들은 폭탄을 안은 채로 적진에 뛰어들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도쿄재판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호주는 전범 목록에 히로히토 천황의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탄압에서 벗어난 일본공산당도 천황의 전쟁 책임을 추궁하고 나섰다. 천황제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히로히토 천황이 전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미 점령군과 일본 정부는 천황에게 전쟁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았다. “천황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는데도 맥아더가 천황의 전쟁 책임을 면책하기로 한 건 미국의 국익에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본 국민들이 느낄 혼란을 최소화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것이 미국의 점령 통치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겁니다. 맥아더는 대신 천황에게 신이 아니라는 것을 선언하게 만들고 천황에게서 권력을 빼앗는 한편 헌법에 전쟁포기조항을 넣도록 요구했습니다.”

박 교수는 “일본인들이 지닌 왜곡된 역사인식의 뿌리에는 패전 이후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묻어버린 채 이를 망각하고 심지어 왜곡, 미화하려는 지속적인 시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천황의 전쟁 책임을 명확히 인식할 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느냐는 말에 박 교수는 “정치적 차원에서 직접적으로 천황의 전쟁 책임 문제를 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본 국민의 반감을 사고 우익 세력을 자극하는 건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인 관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역사적인 사실의 진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그래야 과거의 역사를 미래의 거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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