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 지난달 27일 서울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 내 취업게시판 앞을 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게시판에는 취업안내문 대신 공무원시험과 각종 광고문만 붙어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노동’과 ‘상호작용’으로 이해한 이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노동이 자연을 변형시키는 생산 활동이라면, 상호작용은 인간들 사이의 교류 활동이다. 넓게 해석하면 노동은 경제이며, 상호작용은 정치와 문화다. 개인의 삶과 사회구조 모두에서 경제로 대표되는 ‘생산’과 정치ㆍ문화로 대표되는 ‘의사소통’이 양대 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실존적 조건을 ‘노동’, ‘작업’, ‘행위’에서 찾은 이는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다. 생계를 위한 노동, 가치를 추구하는 작업, 타자와 소통하는 행위는 인간의 존재적 본성이다. 한 개인의 생애에서 생계ㆍ가치ㆍ소통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통찰은 귀 기울일 만하다.

‘노동의 종말’을 말한 이는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다. 그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적지 않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전락시키는 암울한 미래를 경고한다. 정보사회의 도래가 정신노동마저 기계로 대체시킴으로써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추방되는 낯선 시대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변동에 대응하는 노동시간 단축과 제3부문 창출이 그가 내세운 대안이다.

‘노동’과 ‘임금노동’을 구별한 이는 사회학자 앙드레 고르다. 인류가 현재 겪는 것은 상품처럼 팔고 사는 근대적 임금노동의 종말일 따름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화폐로 지불되든 되지 않든 사회 활동으로서의 보편적 노동은 여전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노동력이 과잉 공급되는 노동시장에 대해선 노동시간 단축, 기본소득 보장, 문화사회로의 이행이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한다.

학교에서 노동의 사회학을 다룰 때 강의하는 이론들이다. 이런 노동 담론들을 소개할 때 학생들을 바라보면 무척 안쓰러운 동시에 씁쓸하다. 노동이 이렇듯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에도 노동할 기회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게 안쓰러움의 원인이라면,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본소득 보장이 강의실 밖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 같은 게 씁쓸함의 원인이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독자들은 눈치 챘을 듯하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노후 일자리에서 볼 수 있듯 노동의 불투명한 미래야말로 우리 사회에도 가장 중대한 이슈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지지와 비판에 앞서 노동개혁 어젠다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다. 문제의 핵심은 어떤 내용을 그 개혁안에 담을 것인지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미 노동개혁에 대해 이야기해온 터라 두 가지 쟁점만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정부가 제안하는 임금피크제의 효과다. 연봉제가 갖는 문제점과 정년연장이 가져올 결과를 고려할 때 임금피크제의 도입은 불가피하고 타당하다. 그러나 임금피크제 실시가 청년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결국 기업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소망적 사고다. 고용 절벽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선 청년고용 할당제가 오히려 현실성이 높다.

둘째는 정규직의 기득권과 과보호다. 평균 연봉 1억원에 달하는 공공부문과 대기업 생산직노동자를 지켜보면 기득권과 과보호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채 10%도 되지 않는다. 노동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이들의 고통분담이 요구되지만, 이것만으로 노동시장의 선진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분담’에 담긴 의미를 고려해 대기업 역시 적잖은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불편부당한 중재자의 입장에 제대로 선다면 세대전쟁을 조장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대기업 노동조합 역시 정부 개혁안을 마냥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존재다. 이런 자기 창조 활동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만드는 노동에 있다고 주장한 이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을 넘어서고, 월 평균임금이 200만원도 되지 않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이르며, 청년실업률이 10%에 육박하는 우울한 현실을 지켜볼 때, 세넷의 주장은 한가로워도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다. 하지만 노동이 이런 본래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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