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5

“그래서 잘 하는 요리가 뭔데?”

음식 얘기를 하다 보면 이 질문만큼은 피해갈 수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요리 한다는 사람치고 이 질문 받아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다. 심지어 전기밥솥에 쌀 한번 안쳐보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할 줄 아는 요리가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불과하더라도 주눅드는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비장의 요리 한 가지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대부분 부모를 떠나 자취생활을 하면서 요리에 눈을 뜬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해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생존 차원의 끼니 때우기에 가깝다. 그래서 대개는 집에서 들고 온 김치에 멸치볶음, 깻잎조림 등을 큰 플라스틱 통째로 앉은뱅이 밥상에 올리면 준비 끝이다. 여기다 전기밥솥 뚜껑 열고 밥만 푸면 한 끼 뚝딱 때우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귀찮으면 라면에 달걀 하나 넣어 먹으면 된다. 어쩌다 집에 친구들이 찾아오면 “맛있는 거 차려 봐”라는 성화에 못 이겨 고작 내놓는 요리가 카레다.

13일 아침 냉장고를 열어보니 쇠고기 조금하고 감자, 당근, 양파, 뜯어놓은 카레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밥 안치고 뚝딱뚝딱 만들었더니 카레밥이 완성됐다. 그런데 뭔가 빠졌다. 주업이 기자인데, 신문을 깜박했다. 밥은 다 차렸으니 따끈따끈한 조간부터 읽는다. 이 과정을 같은 각도에서 촬영해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이다.

대학시절 비 새는 반지하방에서 한웅이라는 친구와 1년 넘게 자취를 했다. 대구 촌놈과 전주 촌놈이 만나서 한 방을 써 보니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빨래를 해 봤나, 밥을 해 봤나, 속칭 생활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둘 다 갓난아기 수준이었다. 결국 나는 밥 차리고, 한웅이는 설거지하는 것으로 합의보고 동거에 돌입했는데 한동안은 밥 세끼 챙겨 먹는 데 골몰하느라 강의를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자취생활 1년이 지나도 할 줄 아는 요리가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지지만, 신문사 들어오고 결혼한 후에는 손가락에 물을 묻히지 않고 살았다. 누가 뭐라고 하면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나 자취한 사람이야.”

요리강좌 수강은 지난 5월에 끝났다. 3월 초부터 3개월에 걸쳐 100시간 채우고 종강파티를 했다. 그리고 다시 3개월이 지나 8월 중순이다. 요리 시작할 때 한 무리의 예언자들이 장담했다. “놔둬라, 저러다 말겠지.” “요리 배우나, 안 배우나 마찬가지다. 똑같아진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는 그냥 내뱉은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마치 옛날 자취 때 했던 요리가 쓸모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선각자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난 ‘마이웨이’를 걷기로 했다. 요리강좌는 잊었다. 대신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면 어떤 종목이든 앞치마를 두르기로 했다. 냉장고 열어보고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해보기도 했다. 우리 어머니들도 시장 가기 싫을 때 집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밥상을 차리는 데도 맛 하나는 그저 그만이지 않은가.

그 중의 하나가 카레다. 자취 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쇠고기도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손이 파, 마늘, 간장, 참기름, 후추, 깨소금, 설탕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쇠고기 양념으로 ‘파마간참후깨설’을 넣어야 한다고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쇠고기에 당근, 양파, 감자도 익었다 싶을 정도로만 볶은 후 물과 카레를 조금씩 넣어 농도를 맞췄다. 충분히 먹을 만했다. 하지만 자취시절 먹었던 카레밥과 비교해 보면 재료도 엄청 많이 들어간 지금의 카레밥이 더 맛있다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다음은 김치볶음밥. 보통의 김치볶음밥에 쇠고기를 좀 넣었다. 김치보다는 고기를 좋아하는 딸의 식성을 고려한 절충안이었다. 지금도 새로운 요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기존에 이런 요리가 있었는지에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그냥 생각나면 만드는 것이다.

내친 김에 새우볶음밥에도 도전했다. 인터넷을 보니 재료도 각양각색이고, 요리법도 다양했다. 이게 맛있을까 저게 좋을까 한참을 뒤적이다 인터넷을 닫았다. 입맛따라 레시피도 다른 법, 내 식성에 맞는 새우볶음밥을 만들면 그만이란 생각에서였다. 손 가는 대로 달걀 스크램블, 당근, 햄, 맛살, 버섯을 다져 넣고 참기름에 굴소스라는 것도 뿌렸다. “요리 맛을 내는 데는 굴소스가 약방의 감초”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돈 주고 사보기는 처음이었다. 밥에 양념이 잘 배도록 볶은 후 밥그릇에 담았다. 그리고는 거꾸로 뒤집어 쟁반에 내놓는 것으로 요리는 완성됐다. 인터넷에서 ‘밥그릇에 담을 때 새우를 밑에 깔면 뒤집었을 때 가장 보기 좋은 모양이 된다’고 한 것을 까먹지 않았다.

지난 주말 부모님께 새우볶음밥을 해 드렸다. 자꾸 주방을 드나드는 큰아들이 걱정스러운 눈치지만, 미덥지 못한 손에서 차려지는 밥상이 신기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주방보조를 자처하셨고, 아버지의 평은 “묵을 만하다”에서 “맛있다”로 바뀌었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갑자기 통닭에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인 적이 있다. 예전 같으면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술친구 불러내 호프집으로 갔겠지만 이번에는 맥주보다 통닭에 마음이 끌렸다. ‘명색이 요리를 배운 몸인데…’하는 생각에 이끌려 집 근처 목련시장에 들러 생닭 한 마리를 샀다. 먹기 좋게 토막까지 내 주니 요리라고 특별히 할 것이 없다. 집에서 계란 풀어 묻히고 튀김가루 발라서 식용유에 튀겨주면 끝! 물론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해 두 번에 걸쳐 튀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도 음식 맛이 나오는 것을 보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하다 보면 되는 것이 요리다.

각설하고 “그래서 니가 제일 잘 하는 요리가 뭔데?”라고 물으면 내 대답은 이렇다. 요리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종목, “밥, 냄비밥입니더.”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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