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걸그룹 1호 '김시스터즈' 멤버 김민자

1953년 데뷔한 국내 첫 걸그룹 김시스터즈 멤버 김민자(가운데)와 현재 활동 중인 걸그룹 미미시스터즈(맨 왼쪽과 맨 오른쪽)와 바버렛츠의 멤버들이 화사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한국에서 자라 미국에서 활동하는 걸그룹입니다.” 1960년대 방송된 미국 NBC 버라이어티쇼 ‘딘마틴쇼’. 사회자인 딘 마틴이 세 명의 한국 소녀를 소개했다. 빛나는 핑크빛 원피스를 입고 무대에 오른 10대 소녀 세 명은 경쾌한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화음을 쌓아 박수를 받았다. 세 한국 소녀는 가수 겸 배우로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딘 마틴과 함께 노래도 불렀다. 한류가 미국에 물꼬를 툰 순간이다. 1953년 결성돼 음반을 내고 1959년 미국으로 건너가 활동한 한국의 첫 걸그룹 김시스터즈가 주인공이다.

K팝으로 원조 한류를 이끈 김민자(74)를 1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미국과 헝가리에 살다 28년 만에 한국땅을 밟았다는 그는 “6·25전쟁 후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이렇게 쭉쭉 뻗은 건물이 들어선 걸 보니 마치 뉴욕 도심을 보듯 신기하고 감개무량하다”며 벅차했다. 김민자는 오는 13일 개막하는 제11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김시스터즈의 성공기를 다룬 음악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이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서다. 김민자의 방한에 맞춰 까마득한 ‘시스터즈 후배’인 미미시스터즈와 1950~60년대 음악을 주로 노래하는 걸그룹 바버렛츠가 16일 서울 홍익대 앞 음악바 ‘곱창전골’에서 헌정 공연을 준비했다. 이들이 김민자의 숙소를 찾아 대선배에게 질문을 던졌고 선배는 다정하고 세세한 답으로 응했다.

-1950년대에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어렵지 않았나요?(미미시스터즈 큰미미)

“6·25전쟁 끝난 뒤라 먹고 사는 일이 절박했어. 그 때 밥은 먹고 살아야겠다 싶어서 노래를 시작했지. 고모(‘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를 따라 7~8세 때부터 미8군 부대로 가 노래를 했어. 고모의 두 딸인 김숙자·김애자와 함께였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 미8군에서 위스키를 받았지. 그걸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받으면 쌀을 사 먹었어. 김시스터즈는 그렇게 시작했어. 고모가 날 입양해 우리 셋은 친자매처럼 활동하게 됐지.”

-미국 진출은 어떻게 이뤄진 건가요?(미미시스터즈 작은미미)

“미8군에서 공연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 처음에는 장구도 치고 노래를 했는데 악기 연주하며 노래 부르는 걸 보더니 개성도 있고 재주가 좋으니 미국 가서 해보라는 거야. 그러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제작을 하는 톰 볼이 한국에 와 우리가 오디션을 보게 됐어.”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가 정말 힘드셨겠어요(바버렛츠 박소희)

“말도 마. 그 땐 직항이 없어 한국에서 일본으로 간 뒤 석 달이 지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미국으로 가서는 멤버 중 애자가 병이 난 거야. 눈이 노래지고 황달이 온 거지. 그 때 계속 침대에 누워있다가 매니저들이 들 것에 애자를 실어 무대 옆에 데려다 주면 그 때 일어나 노래하기도 했어. 처음에는 매일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호텔 등을 돌며 공연했어. 미국까지 왔는데 꼭 성공하자란 마음으로 버텼지. 인기를 모아 나중에는 주당 공연료로 1만5000불(1800만 원)까지 받기도 했지. CBS ‘애드 설리반쇼’에 나가고 나니 클럽에서 섭외가 쏟아져 그 때부터 인기를 실감했어. 나중엔 우리가 부른 ‘찰리 브라운’이 빌보드 차트에도 올랐다고 매니저가 그러더라고.”

-활동하면서 멤버들끼리 많이 다투진 않았나요?(바버렛츠 김은혜)

“우리 셋은 고생을 많이 해 끈끈한 사이였지. 6·25전쟁 때 같이 피난을 가면서 한 초가집에 들어가 자는 데 애자가 일어나지 않아 죽은 줄 알았던 일도 있고… 서로 고생하면서 자라서 오래 갔지. 그러다 결혼하며 서로 삶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걸그룹으로 오래 활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미미시스터즈 큰미미)

“느끼는 대로 표현해. 옛날에 우리도 미쳤냐는 소릴 많이 들었는데 요즘엔 자유로운 게 그냥 문화잖아. 남들이 뭐라 해도 그냥 자신감 갖고 밀고 가. 나는 할 수 있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진다고 믿어. 무엇보다 건강히, 행복한 마음으로 활동하는 게 중요해.”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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