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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인종차별

입력
2015.07.2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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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섬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여러 군데 있다. 주로 도미와 우럭을 키운다. 영세한 곳은 부부 또는 형제가 하지만 조금 규모가 있으면 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짐작하다시피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해 전 어느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는 두 청년의 고향이 베트남이라는 것을 알고 내가 인사를 했다. ‘신짜오’. 예전에 베트남 갔을 때 배운 몇 개 말 중 하나로 ‘안녕’이라는 뜻이다. 내 인사를 받은 두 청년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활짝 웃었다. 머나먼 타지, 그것도 육지와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섬에서 모국어로 인사를 받았으니 그 기분이 어땠을까는 웃는 얼굴에 충분히 드러났다.

가장 규모가 큰 가두리 양식장이 있다. 내가 낚시를 하러 종종 가는 곳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 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섯 명이나 있다. 모두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그 가두리는 부친이 벌려놓은 것을 아들이 맡아서 하고 있는데 이 젊은 사장이 성실한데다가 성품도 좋다. 약속한 임금을 제때 정확하게 지급하고 편의를 위해 애를 쓴다. 덕분에 그 다섯 명 표정은 다른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보다 밝다.

젊은 사장은 이번에 그들 밥 먹는 식당을 바꾸었다. 저번 식당에서는 툭하면 밥상을 식당 밖 벤치에 차려주곤 했단다. 냄새 난다고. 이번에 바뀐 곳에서는 그런 차별 없이 편안하게 방에서 먹는다. 나물은 거의 먹지 않고 육고기를 좋아하는 식성에 맞춰 음식에 대한 배려도 해준다. 민족과 상관없이 20대 초반이라는 게 다들 그렇잖은가.

회식을 할 때도 그들은 주로 돼지갈비를 먹는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 아닌가. 돼지고기를 먹느냐고 언젠가 내가 물었을 때 누군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돼지고기 안 먹습니다. 돼지갈비만 먹습니다.”

그들 중 리더가 ‘싸리’이다. 서른 네 살로 배를 잘 다루고 한국어도 유창하게 한다. 영어도 곧잘 해서 우리들 기를 죽이기도 한다. 들어 보니 고국에서 관광지 택시 기사를 했단다. 하지만 사장이 아무리 따뜻하게 배려한다고 해도 이 머나먼 거리가 주는 고통은 어쩔 수 없다.

한 달 반쯤 전 ‘우딘’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왔다. 갓 스무 살인데 이미 결혼을 했고 막 태어난 갓난아이를 두고 왔단다. 이 젊은 친구, 요즘도 툭하면 어린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어 바다 멀리 바라보며 훌쩍인다. 그때마다 동료들이 달래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싸리도 어렵게 얻은 아이가 유산되고 말아 한동안 울적하게 지냈다.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그 애달픈 심정은 낯선 게 아니다. 우리도 얼마 전까지 그랬다. 내 나이 세대까지(그러니까 내 친구들도) 스무 살 넘자마자 외국 선박의 하급선원 노릇을 했다. 그때 받았던 설움과 낯선 곳에서의 고생담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오래 전 파리에서 한 달 간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간혹 인종차별을 받곤 했다. 대표적인 게 몽마르트의 어느 선물용품 가게였다. 주인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에 대한 혐오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벽에 걸린 것을 달라고 하자 쳐다보지도 않고 그것을 내게 던져주었다. 화가 난 나는 동전을 꺼내 일부러 하나씩 던지면서 한국어로, 잡아먹을 듯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할매, 지금 무슨 짓이여. 내가 할매한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할 이유가 어딨어. 응?” 그녀는 어쩌지 못하고 그저 두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생김새와 피부색 하나 때문에 당한 무시. 그 기분은 여태 남아있어 떠올릴 때마다 불쾌해진다.

지금도 이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깔보고 무시하는 한국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럴 때마다 그들을 저 몽마르트 선물가게 주인 할머니 앞에다 데려다 놓고 싶어진다. 한번 당해봐야 그 기분 나쁜 감정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될 테니까.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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