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파리를 방문했을 때 아랍인들과 흑인들이 많이 사는 리용역 근처에 머물렀어요. 그곳의 밤은 시끄러웠습니다. 새벽까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들 때문에 잠을 설치며 생각했어요. ‘지금 서울은 정오를 향해 가는 시간이고 그 거리에서는 내게 익숙한 말로 된 욕설들이 어느 입에서 터져 나올 테지. 조금만 귀 기울이면 그 욕설들의 구구절절한 심정들을 알아챌 수 있겠지.’ 서울을 떠나는 순간, 저는 거친 소리들로부터 당분간은 자유로워졌다고 믿으며 바보처럼 기뻐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거죠.

언제나 우리가 사는 이 별의 어디에선가는 밤의 욕설이, 다른 편에서는 낮의 욕설이 동시에 울려 퍼집니다. 그러니 하나의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수천 개의 말들로 갈라놓은 바벨의 저주가 사실은 신의 배려였을지도…. 우리가 모든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면 결코 잠들 수 없을지도 몰라요. 세상에 가득한 슬픔의 사연을 더욱 낱낱이 알게 될 것이고, 알아들을 수 없는 욕설이 들리는 곳으로 도망칠 수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나 알아듣기 어려운 욕설들도 우리를 슬프게 하고, 슬픔은 우리의 잠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장가를 만드나 봅니다. 완전한 잠이라는 불가능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요. 시인의 달콤한 자장가도 없이 어젯밤 잠들었으니 오늘 아침 우리가 피곤한 건 당연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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