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지난해 9월 문ㆍ이과 통합을 골자로 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총론 주요사항(시안)을 발표했다.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각론 가운데 인문ㆍ사회적 소양 함양 교육 강화 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초ㆍ중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 대목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초ㆍ중ㆍ고 적정 한자 수(數) 명시 및 교과서 한자 병기(倂記) 확대 방안’을 마련하되 ‘중ㆍ고교 각각 900자 기초 한자 유지, 초등에 적정 한자 수 도입 및 교과서 한자 병기’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한자 교육 활성화’는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제고하기 위한 국가ㆍ사회적 요구 사항의 하나이고, 초ㆍ중ㆍ고교별로 적정 한자 수를 명시하며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필요에 따라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명하게 기술되었지만 파장이 매우 클 수밖에 없었다. 한자 교육 활성화의 근본 취지는 실종해 버리고 ‘한글 전용이냐 국한 혼용이냐’ 라는 해묵은 어문 논쟁이 다시 가열되었고, 급기야 이해 관계를 달리하는 각 단체의 아전인수식 해석과 학리성(學理性)을 결여한 개인의 주관적 주장이 난무하고 있는 형국이다.

오해의 양상은 이렇다. 먼저 전용을 주장하는 단체와 혼용을 강조하는 집단 모두 ‘초등학교 전체 교과서 한자 병기’를 거론했는데, 교육부의 발표안 어디에도 그런 내용은 없다. 다음으로 한자 교육 활성화에 따른 교과서 병기 방안이 국어기본법에 명시된 한글 전용 원칙에 벗어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어기본법과 동법 시행령, 그리고 초ㆍ중등학교 교과용 도서 편찬 유의점 및 검정 기준에 따르면, 한글 전용을 따르되 ‘뜻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교육 목적상)필요한 경우’ 공문서와 교과서 등에 한자를 병기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도 이 규정에 따라 초ㆍ중등학교 교과서에 필요한 경우 한자 병기를 하고 있다.

초ㆍ중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를 학습 부담, 교수 부담, 그리고 사교육 유발 등과 연계하여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교육 목적상 필요한 교육 내용이라면 학습자와 교수자는 일정 정도의 교수ㆍ학습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교육 내용이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라는 교육 주체들의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사교육은 평가와 평가 결과에 따른 성적이나 등급의 활용 여부와 관련이 깊다. 제한된 범위의 기초 한자를 선정하고, 주요 교과 학습 용어에 한자를 병기하여 학습자의 언어 이해 능력을 제고하는 방편으로 활용하되 학교 시험의 평가 내용으로 다루지 않는다고 교육부는 밝힌 바 있다.

교과의 주요 학습 용어에 대한 한자 병기와 관련해서도 학습 효과, 흥미도, 가독성 등의 측면에서 서로 다른 주장을 전개하고 있는데, 일부의 근거 자료로 이 문제를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끝으로, 한자 교육을 통해 학습자의 인성과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는 논의 또한 기대 심리이지 한자 교육 활성화의 근본 취지는 아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다시 냉철하게 ‘초ㆍ중등학교 한자 교육 활성화의 근본 취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핵심은 초ㆍ중등학교 학습자의 언어 사용 능력을 신장하고 학습 용어의 정확한 뜻 파악을 바탕으로 학습자의 교과 학습 효율성을 증대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언어 사용 실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초등학교 교과서 소재 한자 어휘 사용 실태 파악을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의 말뭉치를 구축하여 한자 및 한자어의 사용 빈도를 분석한 뒤 이를 바탕으로 초등학교 적정 한자 수를 제시하되 필요할 경우에는 병기 어휘나 병기 대상 및 범위, 병기 시기 및 방법 구안 등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육 주체들의 다층적 검토와 공청회 등을 통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초ㆍ중등학교 한자교육 활성화 문제와 관련하여 이제 더 이상의 억측과 과장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김왕규 한국교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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