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가 폭발하고, 석유 매장량이 동이 나며, 주식 시장이 붕괴하고, 온갖 대기업들이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당연한 것처럼 누리던 여러 서비스가 끊기는 한편, 든든해 보이던 수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져버리고, 제트기끼리 충돌해 수천 개의 화물과 수백 명의 승객들이 공중에서 쏟아지고, 시장 가격이 미쳐버려 가장 귀하고 소중했던 자산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처럼 되어버린다.

어느 재난영화의 설정 같지만, 아니다.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그린 현대사회의 단면이다. 얼마 전 작고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지적대로 우리는 ‘위험사회’에서 살고 있다. 벡은 근대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과학기술로 통제하거나 사회제도로 보상하는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한 1986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광범위하고 밀도 있게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그만큼 위험도 더 증가했다. 세계는 이제 예측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자연적, 사회적, 경제적 재난이 삽시에 전 지구적 재앙으로 확산되는 이른바 ‘글로벌 위험사회’로 변했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월스트리트에서 발발한 금융위기가 곧바로 전 세계의 주식을 폭락시키고 실업자들을 거리로 내몬다. 2009년 신종플루 그리고 최근 메르스를 통해 깨달았듯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유행성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그것이 서울까지 확산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다. 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파손된 원전에서 새어 나오는 방사능은 빛도, 냄새도, 형체도 없이 인접 지방과 해양, 그리고 이웃 나라들까지 침범한다. 바우만은 세계화가 낳은 인류의 단일화란 근본적으로 달아날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뜻이라고 요약해 경고했다.

우리는 이제 위험과 공포까지도 세계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갑작스런 경제 위기로 직장이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주택과 주식 가격의 폭락으로 빈털터리가 되지 않을까, 먹고 마시는 것에 방사능이 묻어 있어 암을 일으키지 않을까, 비행기가 폭발하고 배가 전복되지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유행성 인플루엔자가 공격하지 않을까, 원전이 폭발하지 않을까, 탄저균 같은 생화학무기에 의한 테러나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로부터 달아날 곳이 전혀 없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위험이 나날이 증가한다는 사실에 있다. 대책은? 호들갑이다! 2000년 1월 29일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전세계 130여 국가의 대표들이 모여 ‘생명안정성 의정서’에 서명했다. 이 의정서는 생명공학기술에 심각한 위해성에 대한 정당한 의심이 있을 경우, 과학적 확실성이나 합의부재가 예방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전예방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통제하기 어려운 위험에 대해서는 사전예방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어디 생명공학뿐이겠는가. 경제위기와 빈부격차의 심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핵무기 확산과 원전사고, 생화학무기와 유행성 전염병 등, 모든 글로벌 위험에 대해 사전예방의 원칙을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체 불가능한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성이 의심 되는 낱낱의 경우를 사전에 예상하고 방어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이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주변에는 뭘 그깟 걸 가지고 라며 호기를 부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잘못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18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를 미리 막자면서 총 6장 246항, 181쪽 분량의 회칙을 발표하는 호들갑을 떨었다. 매번 뒷북만 친 메르스 사태를 생각하면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제 우리도 예상되는 모든 글로벌 위험에 대해 분야별로 미리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호들갑을 떨어야 한다.

김용규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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