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마다 특유의 생존력으로 돌파

메르스 이은 국회법 거부 또 위기

남은 기간 위기 초래 않도록 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주최로 열린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의 위기 대처 능력은 탁월하다. 위기가 닥치면 흔들리다가도 금세 용수철 같은 복원력으로 지지를 회복한다. 오랜 역정을 거치며 스스로 터득한 생존능력 덕분일 터이다. 권력의 생리와 큰 판의 흐름을 꿰뚫어 보는 감각이 거센 정치풍파를 견디며 자연스레 몸에 뱄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기세 좋게 출범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닥친 광우병 파동 한 방에 맥없이 무너졌다. ‘친서민’ ‘공정사회’ 등 온갖 기치를 내걸며 민심을 돌리려 했으나 집권 내내 국정동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정권을 마감했다.

박 대통령은 집권 후 5차례의 위기를 맞았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세월호 참사, 비선 국정농단, 성완종 리스트에 이어 메르스 사태까지. 거듭된 인사 실패와 연말정산 파동 등을 제외해도 그렇다. 웬만한 집권자라면 레임덕을 지나 권력을 아예 쓸 수 없는 데드덕(dead duck)에 와있을 상황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고비마다 동물적 감각을 발휘하며 판세를 뒤집었다. 마치 “나의 사전에 레임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번번이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박 대통령은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읍소와 “경제가 무너진다”는 호소에 단박에 상황이 역전됐다. 참패할 거라던 6ㆍ4 지방선거에서 대등한 성적을 거뒀고 7ㆍ30 재보선에서는 압승을 거뒀다. 정권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듯했던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사면의혹이라는 물타기로 위기를 넘겼다. 새누리당 전멸론까지 나왔던 4ㆍ30 재보선은 거꾸로 새정치민주연합에 참패를 안겼다. 지지율을 취임 후 최저로 떨어뜨린 메르스 사태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하소연하고 경제 살리기 행보를 펼치고 한일관계 등 외교 현안이 잘 풀리면 곧 오뚝이처럼 일어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응능력이 뛰어나도 위기가 누적되면 버티는 데 한계가 있다. 가랑비도 계속 맞으면 온 몸이 흠뻑 젖게 마련이다. 더구나 한달 뒤면 임기가 반환점을 돈다. 맷집은 약해지고 관중은 자꾸 다음 선수에 눈길을 준다. 세월을 이길 장사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위기탈출 전략에 진력하기보다는 아예 고비를 맞지 않도록 하는 데 치중해야 한다. 그게 진정한 국가 지도자의 능력이다.

사실 이 정권의 위기들은 거의가 대통령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배가 침몰한 것보다 대처를 늦게 해 인명 구조에 소홀한 게 더 큰 문제였다. 비선 실세 논란은 비정상적인 국정운영 방식이 화근이 됐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사정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노림수가 부른 참화가 아니던가. 권력싸움에 골몰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홀히 했던 메르스 사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숨돌릴 틈 없이 밀려오는 위기에 만신창이가 된 박 대통령이 또다시 위기를 자초하려 하고 있다. 청와대가 공언하는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는 6번째 위기가 될 가능성이 짙다. 국회가 정한 법률의 범위를 넘어선 행정부의 월권을 바로잡자는 게 국회법 개정안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견제하기 위한 국회의 작은 권한에 대통령이 왜 그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지 대다수 국민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10명 중 5명이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반대하는 마당이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압도적으로 찬성한 법안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과 일전을 벌이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반복되는 위기로 제대로 국정을 펴보지도 못했다. 내년부터 본격화할 선거정국을 따지면 앞으로 남은 반년은 그야말로 금싸라기 같은 시간이다. 더 이상 허튼 정쟁에 흘려 버리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시기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을 박근혜 정권의 결실을 맺기 위한 늦가을의 마지막 햇볕으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갈등과 분열의 혼동을 겪으며 허비할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몫이다.

cjlee@hk.co.kr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