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8

쉰 한 가지 요리 배워보니

수료증은 종이에 불과할 뿐

많이 요리해본 사람이 최고

“배운 요리 중에 할 줄 아는 음식이 몇 개나 되는데?” “글쎄, 열 개는 될까….”

요리수업 100시간 동안 배운 요리는 쉰 한 가지다. 3월 초부터 11주 동안 월수금 하루 3시간씩 꼬박 바친 덕분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자신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을 꼽으라면 손가락 숫자도 채울 지 의문이다. 한식조리사 자격증 요리교실의 수료증도 받았지만 증서는 종이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요리 배운다고 떠드는데) 제일 자신있는 음식이 뭐야?” “글쎄 뭐 제대로 해본 게 있어야지. 하나 꼽으라면 밥 뿐인데. 냄비밥.” 레시피를 전혀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다. 요리가 암기과목이 아닌 다음에야 머릿속에 백 가지, 천 가지 레시피를 입력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지.

판정관인 큰딸이 후한 점수를 준 요리는 국수장국과 비빔밥, 찜갈비 정도다. 비빔밥에서 눈에 띄는 재료는 청포묵과 말린 다시마다. 청포묵은 6㎝ 길이로 썰고 다시마는 기름에 튀겨 잘게 부순다. 애호박과 도라지, 고사리, 소고기, 달걀, 고추장 등이 들어가면 누군들 비빔밥이 맛없다고 할까. 집에서 만들 때는 냉장고에서 눈에 띄는 재료만 담아 넣었는데도 반응이 그저 그만이다. 순전히 한국인의 입맛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음식이다.

요리학원 수강생들이 조리대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다. 100시간 요리 끝에 받은 수료증은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국수장국 내놓을 때 은근슬쩍 비빔국수도 내놨다. 오이, 표고버섯, 석이버섯, 소고기 넣고 ‘파마간참후깨설’로 양념하면 끝인데 평소 보던 비빔국수와 다른 점은 고추장을 쓰지 않는 것이다. 간장 비빔국수인데 맛이 제법이다.

만둣국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자 둘째딸이 가장 싫어하는 종목이다. 이렇게 반응이 상극인 음식으로는 갱시기 또는 갱죽으로 불리는 음식이 있다. 여러가지 나물로 만든 국에 밥을 넣어 끓인 음식으로 수제비를 넣기도 한다. 우리 어릴 때는 꿀꿀이죽이라고도 불렀는데 둘째딸은 음식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난 라면도 넣어보고, 잘게 썬 가래떡도 넣어보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는 딸을 보면서 세대차를 느낀다.

어쨌든 이 만둣국을 배우는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어릴 적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한나절 내내 만두를 빚던 기억이 새롭다. 얼굴이 밀가루 범벅이 될 때쯤이면 찜통에서 만두가 쏟아져 나왔다. 군만두까지 먹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그 만두를 직접 만드는 것이다. 숙주나물, 두부, 김치, 미나리, 소고기 등을 넣으면 되는데 돼지고기에 부추를 넣어도 되고, 소ㆍ돼지고기를 섞어도 된단다.

만둣국을 만드는 재미는 피(皮)에 있었다. 1인분 용으로 중력분 밀가루 60g에 소금과 물 15g으로 반죽, 비닐에 싸서 숙성한다. 그리곤 한참 동안 만두소를 만든 후 반죽을 6등분해 얇게 민다. 6개의 만두를 만드는 것이다. 지름 8㎝의 둥근 모양으로 피를 만들어 소를 넣고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빚어내면 된다. 오랜만에 해보니 피 모양이 들쭉날쭉이다.

만둣국 배우던 날 밤, 집에서 한 번 더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상에 올렸더니 역시 반응이 별로여서 나 혼자 배 터지도록 먹었다.

생선 요리는 감히 집에서 만들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한 종목이다. 생선전은 동태의 지느러미와 비늘을 칼과 가위로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기를 닦은 후 생선 뼈를 중심으로 양쪽의 살을 길게 칼로 잘라내는 ‘세장뜨기’를 하면 반은 끝난다. 살 2, 뼈 1로 세장을 만드는 것인데 처음 해보는 것이라 잘 잘라지지 않았다. 0.3㎝ 두께에 5x6㎝로 포를 뜬 후 칼등으로 두들긴다. 소금과 흰후추를 뿌리고 밀가루를 묻힌 후 달걀물에 넣고 프라이팬에 지져내면 끝. 제사 때 곧잘 주워먹기는 했지만 생선전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힘이 드는 줄은 직접 해보고서야 알았다.

궁중요리인 어선(魚膳)을 만드는 것도 세장뜨기부터 시작한다. 0.3㎝로 포뜨고 소금과 흰후추, 생강즙 뿌린 후 김발과 젖은 거즈 위에 펴놓는다. 녹말가루 골고루 뿌리고 볶은 오이와 당근 황ㆍ백 지단, 표고버섯 등을 깔아 둥글게 만다. 양끝에 녹말을 약간 뿌리고, 김이 모락모락한 찜통에 10여분 간 찐 후 2㎝ 두께로 잘라놓으면 된다. 만드는 노력에 비해 먹는 것은 순식간이다.

닭요리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닭찜은 닭 내장과 기름을 제거하는 귀찮은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는 5㎝ 크기로 토막을 내는데 칼을 어디로 집어넣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토막낸 닭은 찬물에 핏물을 빼고 끓는 물에 데쳐 기름을 없애고 헹궈 물기를 뺀다. 파와 마늘, 생강은 다지고 당근은 밤알 크기로 썰어 모서리를 다듬는다. 냄비에 닭과 양념장 절반을 부어 센불에 끓이다 중불로 줄인 후 뚜껑을 덮고 익힌다. 당근 넣고 부드러워지면 미리 손질한 표고버섯과 양파, 은행 등 나머지 재료와 양념장을 넣고 국물을 끼얹어가며 윤기나게 조린다. 마지막은 역시 달걀 지단으로 만든 고명이다.

동네 시장 닭가게에 가보니 주인 아저씨가 알아서 닭 한 마리를 해체해 준다. 푸줏간에서도 소, 돼지 고기를 구이, 찌개, 돈가스 등 요리에 알맞게 잘라주니 맛 내는 일만 남았다. 이제 요리학원 강습도 끝나고 오로지 남은 것은 실전뿐이다. 내 필살기를 묻는 사람들에게 손가락 수만큼의 요리라도 자신있게 얘기할 날을 그려본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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