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재확인한 공공 기능의 붕괴

그래도 이기(利己)충돌 각자도생 안돼

공공기능 복구, 공존의식 제고가 과제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중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한 일선 학교 휴업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주 전국의 학교 10%가 문을 닫았다. 서울ㆍ수도권만 놓고 보면 열 곳 중 세 곳이다. 메르스에 화들짝 놀란 학부모들의 성화로 교육부가 휴업권고를 냈다. 잘못하면 애들이 죽을 수도 있는 판에 학교공부가 뭐 그리 대수냐는 데야. 넓은 학교 공간들이 갑자기 텅 비었다. 공포가 대책 없이 번져가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학교 안 간 아이들이 저녁이면 학원에 갔다. 숨결이 오갈 정도로 빼곡히 붙어 앉아 밤 늦게까지 수업을 했다. 학부모들의 성화도 없었다. 이번엔 교육당국이 먼저 판단해 학원들에도 휴업을 권고했다. 그런데도 휴업 보고한 곳은 단 130여 곳, 서울시내 2만5,000여 학원의 0.5%였다. 기말시험을 앞둔 터라 빠진 학생도 거의 없었단다.

학교가 그렇게 불안했던 학부모들이 시설과 위생, 학생 밀집도에서 비할 수 없이 열악한 학원에는 아이들을 다그쳐 보냈다. 학원수업 전까지 빈 낮 시간 아이들은 어둡고 밀폐된 PC방에서 시간을 죽였다. 전염병균이 있다면 최적의 증식환경이었다. 공공 기능에 대한 불신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정작 메스르에 취약한 건 노약자였다. 지나치다 본 세계보건기구(WHO) 조사단의 조언을 듣고서야 아이들이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다. 원인 제공자는 물론 정부였다. 무엇보다 초기 정보봉쇄는 두고두고 변명할 여지없는 뼈 아픈 실책이었다. 뒤늦게 정보가 공개됐으나 이번엔 현실과 자꾸 어긋났다. 처음엔 정보 공백이, 나중엔 정보 불신이 공포를 만들고 키웠다. 공공 기능은 무력화됐다.

그래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됐다. 믿을 데 없으니 각자가 알아서들 살길을 찾았다. 겁 먹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쇼킹한 메르스 관련 정보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올리고 퍼 날랐다. 의견, 추측까지 뒤섞인 온갖 정보들이 굼뜬 정부가 본격 시동을 걸기까지의 공백, 그 뒤에도 숭숭 뚫리는 허술한 구멍들을 메웠다. 괴담은 필연적 부수물이었다.

어떻든 상황은 차츰 가라앉을 것이다. 가장 걱정되는 후유증은 이 중구난방의 생존방식이 고착화하는 현상이다. 이해 조율을 통해 최다수의 이익과 공존을 도모하는 것이 공적 시스템의 기능이다. 각자도생은 결국은 개인 간 이해 충돌을 감수하고도 각자의 이기심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공존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각자도생의 판단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주 불합리하다. 학교를 생각하면 건강보다 못한 그깟 공부가 되고, 학원에서는 거꾸로 성적보다 못한 건강이 그깟 것이 되는 모순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진다. 말할 것도 없이 국가에서 제공하는 교육보다는 개인이 선택하는 학원 교육이 훨씬 우월하다는 인식도 깔렸다. 역시 국가 공공 시스템에 대한 부정이란 점에서는 같다.

메르스 사태와 관련한 정부의 무능, 무책임에 대한 질타는 나올 만큼 나왔다. 또 한 자락 얹는 건 별 의미 없다.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가 더 악화시켰지만 사실 공공기능, 권위에 대한 이 지독한 불신의 책임을 이 정권에만 물을 건 아니다. 아마 근현대사 전체의 경험을 통해 축적됐을 것이다. 1960,70년대 드문 성취도 개인 선택의 여지가 없던 강제적 권위로 해서나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쯤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 배운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하나 더한다면 동일 정체성일 것이다. 그걸 현실적으로 발현케 하는 것이 공공 기능이다. 플라톤 이래 인문사회학자들의 머리 수만큼이나 많은 온갖 국가론도 결국은 좋은 국가를 만드는 다양한 공적 시스템에 대한 의견들이었다.

이번 사태로 재확인한 것은 대다수 국민 머리에선 공공 기능이 이미 붕괴했다는 사실이다. 국민각자의 이기를 절제하고 조화하는 것이 국가라는 홉스의 말을 빌자면, 우리는 지금 심각한 국가해체 현상을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메르스 이후, 공공 기능을 복구하고 공존의 인식을 세우는 일이 다른 그 어떤 일보다도 절박해 보이는 까닭이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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