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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숨기고, 격리 거부하고… 방역망 허무는 '낙인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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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숨기고, 격리 거부하고… 방역망 허무는 '낙인 역효과'

입력
2015.06.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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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식에 본능적 방어 행동

감시ㆍ처벌ㆍ희생 강요 땐 상황 악화

사회구성원들의 이해ㆍ배려 절실

"지속적인 관리 받는다는 인식 줘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파악돼 15일 응급실을 폐쇄한 서울 원자력병원 입구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가 대거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던 환자가 다녀간 것으로 파악돼 15일 응급실을 폐쇄한 서울 원자력병원 입구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삼성서울병원의 환자 이송요원인 137번(55ㆍ남) 환자와 대전 대청병원에서 파견근무를 한 부산의 한 IT 회사직원 143번(31ㆍ남) 환자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증상이 나타났는데도 관련 사실을 숨겼고, 격리되기까지 수백명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염 확진이 됐는데도 가족 외에는 추가 접촉자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바이러스 검사 결과를 기다리지 못해 걸쇠를 부수고 통제된 진료소를 벗어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환자도 있었다.

이처럼 타인에게 전파 가능성이 있는데도 증상을 숨기고,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정적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메르스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가 증폭될수록 개인에게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축소하려는 행동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경제적, 사회적 네트워크, 정서적 자원 등) 자원부족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이해부족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식 부족 ▦일상적 삶의 변화에 대한 거부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 등이 격리조치에 불응하거나 자신의 증상이나 바이러스 노출 여부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행동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박한선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은 “이런 경우 격리, 차단 등 정부조치에 반발하거나 수동적으로 지시를 어기고, 정확한 정보를 알리지 않는 등의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가해진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기제가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율배반적으로 변한다. 서정석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타인들에게는 메르스 확진 환자가 경유하거나 발생한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보건당국에 신고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막상 자신이 의심환자가 되면 병원에 가야 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면서 “사회적, 국가적으로 개인에 대한 희생만 강요되고, 경제적, 정신적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러한 현상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의들은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찬승 재난정신건강위원회 위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사회적으로 매장된 것처럼 가정이 파탄 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생존을 위해 메르스 감염 사실을 숨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격리 대상자에 대한 감시와 처벌만 강조하는 보건당국의 태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전문의들은 “감염질환에 따른 격리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현실에서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고 자가 격리 대상자가 이동할 경우 경찰이 출동해 처벌할 수 있다는 엄포만으로는 의심 환자들을 관리할 수 없다”면서 “격리자들이 학교, 종교시설, 정부기관 등 사회 연결망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심리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캐나다에서 사스가 유행했을 때 격리자의 28.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31.2%는 우울증을 앓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박한선 위원은 “메르스 사태가 확산될 경우, 대중은 자신이 격리돼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자신이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 기피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낙인감에 떨게 될 것”이라며 “사회구성원들이 격리된 이들의 심리적 고통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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