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대 없이 휘둘리다 메르스 공포 키워

국민 나 홀로 판단으로 자기처방 의존

전문적 지식과 권위자 능력 필요한 때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당나귀를 끌고 시장에 팔러 가고 있었다. “힘들게 끌고 가다니, 타고 가면 편할 걸.” 주막 상인들의 말에 아버지는 아들을 나귀 등에 태웠다. “늙은 아비에게 나귀를 끌게 하다니, 불효 막심한 아들이군. ” 나무그늘 노인들의 말에 아버지와 아들은 자리를 바꿨다. “아이가 가엽군, 자신만 편하면 그만인가 봐.” 빨래터 아낙들의 말에 아버지는 아들도 함께 나귀 등에 태웠다.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 팔기도 전에 나귀가 쓰러져 버리겠어.” 우물가 아가씨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면 되겠네.” 옳다구나 여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나귀를 어깨에 둘러맸다. 개천을 건너다 겁에 질린 나귀가 바둥거리기 시작했고, 아버지와 아들은 나귀와 함께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어릴 적 들었던 우화다.

그저께 밤, 친구 아버님의 부음을 접하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서울 강북에 있는 대학병원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친구의 신분을 짐작할 만큼 많은 조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식장은 썰렁했다. 친구들 십여 명이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이미 주제로 올라와 있었다. “아내가 지하철이나 시내버스 타지 말고, 사람 많이 모인 곳에 오래 있지 말라고 하더라”고 너스레를 치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메르스에 대한 공포감이 의외로 커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친구가 “내가 식장에 간다고 했더니 대신 부의를 전해 달라는 녀석들이 7명이나 되더라”면서 불편함(?)을 내비쳤다. 다른 친구가 “우리는 무식해서 용감한 편”이라고 말하자, 또 다른 친구는 “이 곳도 내일 ‘명단’에 들어가면 어쩌나”하며 걱정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정도를 넘어 콜레라 비상사태가 전국에 발표된 듯한 분위기였다. 그들 대부분이 교수 관료 변호사 기업임원 등으로 ‘충분히 알 만한 사람들’이라고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 때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현재 메르스 환자 발생 병원으로 이름이 공개된 강남 대형병원의 의사였다. “난 외과병동이잖아, 메르스와 아무런 관련도 없거니와 격리와도 전혀 무관해. 하지만 너희들이 나를 만나면 찜찜해할 게 분명해. 대신 부의나 잘 전해주렴”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아무런 께름칙함조차 갖고 있지 않았지만 그는 일반인들이 메르스에 대해 얼마나 필요 이상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당나귀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호된 핀잔을 들었다. 동네 사람들이 잘못한 게 뭐냐,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들을 한 것이 아니냐는 공박이었다. 대화가 서서히 정치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담당 장관이 원래 미운 털이 박혀 있었다느니, 현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이 사태를 부풀리고 있다느니, 서울시장이 대권에 욕심이 있어 치고 나섰다느니 별의별 말들이 나왔다. 원래 동료들간의 대화가 정치 쪽으로 가면 일어설 때가 되었다고 한다. ‘모든 게 언론의 탓이고, 기자들이 문제’라는 말이 나올 때쯤 조용히 자리를 떴다.

메르스 사태에 대해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으며, 오히려 너무 많이 아는 게 탈일 정도다. 현재 보건당국의 모습은 아무런 방침이나 줏대 없이 무작정 길에 나섰다가 이런저런 말에 휘둘리다 모두가 함께 개천에 풍덩 빠져버린 형국이다. 물속에서 계속 허우적대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교육도 그렇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우리는 모두가 의사 못지않은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을 정도다. 국민을 설득하여 믿음을 주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설득 받지 못하고 믿음을 얻지 못하는 국민은 불안과 공포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르는 것까지 알려주고, 자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차분하게 전문가의 지식과 권위자의 능력을 과시할 시기다.

정병진 논설고문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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