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갈 막말' 파문을 일으켜 당내 윤리심판원에 제소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이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징계 결정을 위한 윤리심판원 2차회의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일본정가에선 하시모토 도루(橋下徹)라는 한 도발적 정치인의 정계은퇴 선언이 단연 화두였다. 현재의 오사카부(大阪府)와 오사카시(市)를 통합해 도쿄도(東京都)와 같은 ‘오사카특별도(都)’로 바꾸겠다는 그의 정치도박은 좌절됐다. 유신당의 대주주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지난 17일 밤 주민투표 결과 반대가 앞서자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연내에 열리는 차기 시장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퇴장한다고 밝혔다.

떠나는 순간의 돌출언행도 그답게 강렬했다. 200여명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낸 패장은 의외로 상쾌한 표정을 지었다. “나 같은 정치가는 원포인트 릴리프(한 타자만 맡는 구원투수)입니다. 권력자는 일회용이 좋습니다.” 그는 “패배는 패배”라며 “인간은 불안이 남아있는 한 현상유지를 희망한다”고 결과를 거침없이 털어버렸다. 오사카의 이중행정을 바꾸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날것처럼 흥분하던 모습은 없다.

7년 남짓 열광과 반발, 갈등과 증오를 몰고 온 하시모토의 스타일은 ‘극장정치’로 불렸다. 취임 일성이 “오사카 공무원, 여러분은 파산회사의 종업원들”이었는가 하면,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 잡종개다. 개혁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지금 일본에 가장 중요한 건 독재다.” 그러나 화려한 쇼를 보여주는 듯한 정치방식에 일본사회는 적지 않은 홍역을 치렀고, 최근엔 오사카 시민들이 주민투표의 낭비행정을 감수해야 했다.

독설과 막말로 대중을 현혹하는 수법은 적을 만들어 이득을 취하는 배제의 정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기자의 한 일본 지인은 “모두가 야단법석을 떨며 뭔가에 몰입해 상대쪽에 격앙됐지만 지금 와서 보니 즉흥적인 개인정치인에 농락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사실 정치인에게 편가르기는 마약과 같은 유혹이다. 복잡하게 얽힌 이슈들을 단순한 양자택일로 바꿔 공격적 자세로 어필하는 것만큼 끌리는 전략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폭언을 퍼붓는 어떤 정치인이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때, 사태는 묘한 단계를 밟아가기 쉽다. 관심이나 애정이 전무한 대중들에게도 문제인물이 밥상의 화두로 등장하고, 쟁점이 달아오르면 찬반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전선이 확대되면 수세에 몰렸던 장본인은 반동의 기회를 찾고 계파적 정체성과 소속감을 강화하게 된다.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에 동의한다면 기계적 중간층은 없어 보인다. 건전하고 상식적인 중도적 입장은 특정이슈가 극단적으로 부딪칠수록 왼쪽이나 오른쪽 하나를 택하기 마련이란 것이다.

결국 막말도 정략의 산물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된 커뮤니케이션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특정 상대만은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는 증오의 정치풍토는 일반 국민도 물들인다.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정치인들이 하시모토의 수법을 모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실정이다. 정작 하시모토 자신도 “적을 만드는 정치인이 계속 세상에 있는 것은 해롭다”고 은퇴의 변을 뻔뻔하게 말했다. 일반인들이 SNS공간을 통해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다고 경계하는 사회비평이 나온다.

지금 한국에도 막말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10살도 넘는 선배인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치느냐고 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나꼼수’김용민씨의 막말파동이 역풍을 맞았던 뼈아픈 기억을 잊었나. 야권의 정말 놀랄만한 내성(耐性)이다. 공개석상에서 술술 말해 치우는 배포에 어이가 없다. 공갈발언 파동은 이제 친노 비노의 정쟁으로 확대됐다. 계파적 이익을 위해 막말을 도발하는 저질정치를 여론이 경고하고 압박하지 않는다면 국민은 더 험한 꼴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박석원 도쿄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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