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9. 육아 '노동'

“아들이랑 잘 놀고 있어?”

육아휴직 중에 이 아빠가 많이 들었던 인사말 몇 개를 꼽으라면 단연 1위에 오르는 말이다. 휴직으로 들어앉은 사람한테 먼저 연락해준 게 고맙고 반가운 일이지만 이 숭고한(?) 육아노동을 논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좀 당황스럽다.

‘잘 아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편하게 던진 인사말이겠지….’ 이해를 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육아휴직을 노는 것으로 알고 있구나’, ‘밭 맬래 애 볼래 하면 밭으로 간다는 옛말에 웃고만 마는구나.’

실제 휴직 6개월차에 한 선배로부터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이제 그만 놀고 일 좀 하지 그래?”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고 세상 흐름을 어느 정도 읽어내는 분이 이 정도로 이야기 했다는 것은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하단 이야기.

대표적인 예가 ‘아빠의 육아휴직’을 ‘육아를 빙자한 한 남자의 휴가’로 보는 우리 사회의 삐딱한 시선이다. 물론 대놓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없다.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런 느낌을 받고 있고, 육아휴직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며 서로 확인한다.

‘우리 회사에는 남자 육아휴직 전례가 없다’는 사람들의 회사(의 간부들)도 결국 아빠 육아휴직에 대해선 이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보면 거의 맞다. 이 아빠더러 ‘용감하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휴직 초기이던 1년 전과 비교하면 줄어든 것(체감하고 있다)은 다행이지만, 여성도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경제회복이 가능하다, 출산율을 끌어 올려야 나라가 후퇴하지 않는다고 너도 나도 이야기 하면서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한 기업들의 이런 시선에 대해선 손 놓고 있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육아휴직 막바지에 바빠졌다. 이 아빠를 물심양면으로 응원해준 분들에게 복직 전에 인사를 한번은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들과 함께 기차, 비행기,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으로 나흘짜리 투어를 마쳤다. 아빠랑 같이 택시 뒤에 앉은 아들은 이내 잠이 들었다.

여하튼 육아휴직 엄마들도 ‘잘 놀고 있어?’ 하는 식의 인사를 받는지 모르겠으나, 이 아빠는 그런 인사를 받으면 당황스럽다가도 억울해진다.(뭐,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휴직은 아니지만!) 이 아빠는 1년 가량의 지난 육아휴직을 반추하면 ‘하~~’ 하는 탄성부터 나온다. 임박한 복직에 대한 심적 부담 표출이라기보다 힘든 시절을 되새김질하는 데서 오는 한숨 같은 것이다.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오는 일종의 탄식 같은…. 군대라면 몰라도 육아휴직은 다시 못할 것 같은 것도 요즘 드는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육아휴직은 노는 거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와 신나게 노는 게 육아휴직자의 일이다.(노는 것 외에도 수행해야 할 일이 무수히 많은 건 알고들 계시겠죠?) 그렇지만 경험상 어린 아이와 노는 것만큼 힘든 것도 찾기 힘들다.(이 아빠가 편하게 살아왔구먼, 으로 읽지 마시길!) 아침 6시에 일어난 녀석이 낮잠 한숨 안 자고 오후 2,3시까지 계속 논다고 하면 그 아이를 보는 사람은 죽음에 가깝다. 오죽 했으면 아들을 재우기 위해(=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마치고 아빠가 좀 쉬기 위해) 커튼을 달고, 졸음 유발 음악을 틀고 잠을 부르는 음식과 약을 검색했을까. 아들을 길게 재우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그 시간에 집안 일을 하고 내가 쉬기 위해서는 놀 때 화끈하게 놀아줘야 하는데 또 그 계획을 세우는 일은 차라리 군사작전이고 그 작전을 주 1회가 아니라 매일 펼치는 일은 일종의 고문이다. (▶관련 육아일기)

지난해 가을 육아휴직 중인 회사 동료들과 용산구의 한 키즈카페에서. 청일점이었음에도 이 아빠는 어색한 게 없었고, 시커먼 사내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즐거웠다.

아빠의 육아휴직에 대한 또 다른 오해 하나는 육아휴직을 하면 낙오자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일을 꽤 오랫동안 쉰 만큼 ‘낙오(대오에서 처져 뒤떨어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이 아빠도 일터로 돌아가면 뒤처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에 대한 유ㆍ무형의 손해도 감수할 각오로 육아 세계에 뛰어 들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육아휴직자들(아빠 엄마 모두)과 이야기 해본 결과 이 ‘낙오의 상황’은 영원하지 않다. 하는 일(업종)과 개개인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응기만 지나면 되레 업무능률(생산성)이 올랐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에 대해 ‘회사 일이 육아보다 쉽기 때문’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고, 전에 없던 어떤 능력이 생긴다고 이야기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공무원)는 이렇게 하소연하기도 했다. “복직해서 휴직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고 해도 주변에서 낙오시키려고 한다.”육아휴직 희망자들에게 낙오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육아휴직을 유흥휴직으로 여기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조장한 공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최근 부랴부랴 준비를 해서 가족끼리 보르네오섬의 한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냈다. 휴가를 서두른 건 긴 휴직으로 올해 쓸 수 있는 연차가 며칠 안 되는 것도 이유지만 이번 여름에 휴가를 가겠다고 하면 이런 소릴 들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1년 놀다 온 넘이 또 휴가를 가??’ 비수기인 터라, 저가항공도 많이 생긴 터라 제주도 갈 비용이면 남이 해주는 밥 먹으면서 이런 사진도 한 장 남길 수 있다.

사실 복직 전의 이 아빠가 복직 후의 일에 대해, 복직 후 이 아빠의 낙오 여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일. 하지만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는 데에는 전에 없던 모종의 자신감이 배경이 됐다. 다름 아닌 지난 1년 동안 익힌 육아언어다.(▶관련 육아일기) 주양육자 신분으로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과는 예전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소통은 만사의 바탕이다.

실제 육아 선배, 전문가들은 아빠가 육아휴직을 해서 제대로 애 한번 키워보면 직장과 집에서의 ‘만족도’는 이전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 한다. 이 아빠의 경우도 얼추 들어맞아 가는 것 같다. 어머니 장모님을 비롯해서 여동생들, 숙모님, 주변의 형수님들, 제수씨들이랑 얘기가 훨씬 많아졌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예전보다 더 잘 통한다. 초면의 예비역 아저씨들이 그냥 통하는 것처럼 동질감 같은 게 생긴다.

이 분위기는 직장에서도 비슷하게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게 또 이 아빠의 생각이다. 약간의 근거도 있다. 같이 육아휴직 중이던 회사 여기자들과 몇 번 모임을 가졌는데 그들을 대하는 느낌은 육아를 하기 전과는 확실히 달랐고, 휴직 중에 만난 여동료와 이야기 할 때에도 전과는 사뭇 다르다. 이 아빠만의 생각일 수 있으나, 잘 통했다. 세상의 반이 여자다. 그 여성들과 말이 더 잘 통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은 건 당연하다.

임박한 복직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 아빠를 찔러 본다. “잠 못 자는 날들의 연속이지?” “압박감 장난 아니겠어!?” 아들과 아내를 생각하면 ‘응 걱정돼 죽겠어’ 류의 답을 해주는 게 뒷날이 편하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전달 직업정신이 발동해 있는 대로 이야기 한다. “회사가 고맙다.”

이 대답이 이해 안 된다고 한다면 제대로 된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글·사진=정민승기자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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