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낙원동을 찾은 한 노인이 힘없이 길을 걷고 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인류가 만든 가장 놀라운 세 제도는 가족, 시장, 민주주의다. 인간은 정서적으로 외롭고, 먹고 살아야 하며,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존재다. 오랜 반복적 학습을 통해 가족과 시장과 민주주의를 발명한 이유다.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근대 이후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발전된 것이지만, 가족과 시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사회생활의 기본 제도였다.

오늘날 이 셋 가운데 가장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이 도전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가구 구성의 변화다. 우리 사회의 경우 1985년 3인 이상 가구는 총 가구의 80.8%를 차지했지만, 2010년에는 1ㆍ2인 가구가 48.2%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1인 가구는 23.9%를, 2인 가구는 24.3%를 차지했다. 25년 동안 미혼과 이혼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통계청 전망에 따르면 1인 가구는 2025년에 31.3%, 2035년에는 34.3%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20년 후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혼자 사는 사회가 도래하니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해체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혼자 살게 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결혼이 어렵거나 번거로워 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경우가 하나라면, 이혼과 배우자 사망으로 불가피하게 혼자 살 수밖에 없는 경우가 다른 하나다. 독거 노인은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전국적으로 독거 노인은 137만9,000명에 달한다. 전체 노인의 20% 정도 규모다. 주목할 것은 이들의 삶의 질이다. 이들의 62.4%는 절대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물질적 빈곤’에 더하여 이들은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쪽방촌 등에서 생존을 연명해야 하는 ‘관계의 빈곤’이란 또 다른 고통을 견뎌내고 있다.

독거 노인의 가장 안타까운 비극은 고독사다. 한국방송공사(KBS) 조사에 따르면 2013년 혼자 거주하다가 사망 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1만1,002건에 달했다. 하루 평균 4.7명이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물론 고독사가 독거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직과 가족 해체에 따른 40, 50대의 고독사가 60대 이상의 고독사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 왔다 결국 혼자 떠나는 게 인간 본래의 운명일지라도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은 삶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칼럼을 쓰는 까닭은 이 5월이 가정의 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바로 이 5월에 있다. 이 땅의 어린이들과 어버이들, 그리고 부부들까지를 포함해 과연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가운데 특히 어버이 세대인 노인의 현실은 대단히 안타깝고 심각하다. 증가하는 우울증, 고독사와 더불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이 땅의 노인들이 처한 암울한 현실을 생생히 증거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미국 소설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제목이다. 어느 나라이건 노인은 더 이상 그 사회의 중심이 아니다. 젊음의 아름다움만 찬양될 뿐 나이 듦의 지혜는 낡고 철 지난 것으로 치부된다. 우리 사회의 경우 노인을 위한 가정도 기실 없는 것과 매한가지다. 노인은 더 이상 가족의 중심이 아니며, 나머지 구성원들에게 경제적 부담만 안기는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고령세대 대책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듯 누구든 머지않아 노인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면 노인 문제와 이와 연관된 가족 문제는 결국 사회제도의 몫일 수밖에 없다. 노후복지를 포함한 고령세대 정책에 정부와 시민사회는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찬란한 5월의 신록도 머지않아 갈색의 가을로 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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