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7 아들과의 고구마 농사

올해도 고구마 농사를 짓기로 하고 지난 주말 아들과 고구마순을 심었다. 밭 위치는 작년과 같은 경기도 연천 장남면의 임진강 강변. 서울 집에서는 70㎞ 남짓 떨어진 곳이지만 밀릴 일이 없는 길이라 차로 1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지난해 적지 않은 수확의 기쁨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고구마 농사를 짓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복직도 복직이지만 심을 때 한 번, 중간에 잡초제거 두 세 번, 마지막에 수확 한 번 등 밭에 네댓 번만 가면 되는 일인데도 아내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리 세 식구가 고구마를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냥 사먹자는 것이었다. 비닐, 모종 값에 길에 뿌리는 돈과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도 문제 삼았다. 사실 유기농 무농약 고구마를 손수 키워 먹이겠다며 지난해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들이 먹은 고구마는 2㎏이 될까 말까 했다. 그 수십 배의 고구마를 이 아빠는 지인들에게 뿌려댔으니 아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아빠는 고구마 농사를 강행하기로 했다. 지난해 농사 경험상 잡초제거 때 외에는 손이 거의 가지 않았고, 그마저도 이 아빠가 할 일이지 아내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밭일을 핑계로 반나절 정도씩 자리를 비우는 것을 문제 삼을 수 있겠지만, 아들을 대동해 간다면 아내도 내심 즐겁지 아니할까?) 아내는 수확 때나 나와서 원두막에서(밭에 멋진 원두막이 있다!) 일꾼들 삼겹살이나 한번 구워내면 됐다. 그 역시도 바람 쐰다는 생각으로 나와서 사람들과 어울리면 일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고랑과 이랑을 넘나들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아들. 처음 만난 누나들과도, 처음 접한 벌레들과도 아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여하튼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짓기로 한 데에는 또 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무농약, 유기농 고구마 생산이 작년의 주목적이었다면 올해는 밭을 아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이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아들은 요즘 새, 꽃, 곤충들의 이름을 외워가며 관심을 표하고 있는데 더 많은 생물들을 책이나 화면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면 좋겠다 싶었다. 뛰노는 걸 즐기는 아들이 울퉁불퉁한 밭에서 뛰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으로 봤다. 올해 농사는 주목적만 달라진 게 아니었다. 지난해 심었던 밤, 호박, 황금고구마 중 가장 평이 좋았던 황금고구마만 올해 심기로 했고, 작년 멤버에 한 가족이 더 늘어 네 가족이 함께 하기로 했다. 재배 면적은 전년과 동일(330㎡ 가량)하다.

이 아빠가 맡은 임무는 두둑 덮을 검정비닐과 고구마순을 구하는 일. 순을 심기 전 아침 일찍 밭을 갈고 이날 먹을 점심과 새참은 다른 집에서 준비하기로 했다. 밭으로 가기 전 파주 적성읍내의 한 종묘상을 들렀다. 밭에서 5㎞ 가량 떨어진 곳이다. 황금고구마 순을 주문하자 주인은 베니하루까라는 신품종이 인기가 있다며 권했다. 호박고구마(부드럽고 단맛이 장점)와 밤고구마(심은 순의 생존율이 높아 수확량이 많다)의 장점을 딴 게 황금고구마인데, 이 품종은 그보다 한 단계 위의 품종이라는 것이다. 팔랑귀의 이 아빠는 그 신품종으로 여덟 단을 구입했다. 뒤에 전문가(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에너지작물연구소 고구마연구실 남상식 연구관)의 이야기를 들으니 2007년 일본에서 개발돼 2,3년 전에 국내 들어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품종으로, 수확 후 보관하는 동안 당도가 급등하는 고구마였다. 장사꾼들은 이걸 ‘꿀고구마’라고 이름 붙여 요즘 같은 때에 내놓는다고 했다.

고구마 순이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심은 뒤 비가 충분히 내려야 하지만 일기예보상 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랑에 물을 뿌리는데 “나도, 나도”를 연발하며 따라 붙은 아들과 함께. 아들이 거들어서 그런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참 시원했다.

한 단에 5,000원 받을 황금고구마 대신 7,000원을 받을 수 있는 ‘꿀고구마’를 팔게 된 종묘상 주인은 탄력을 받았는지 큰 비닐 봉지에 고구마 순을 착착 담으며 한마디 던졌다. “그런데 고구마 심기 전에 소독은 안 하세요?” “무슨 소독요??” “토양 소독말이죠. 땅 속 벌레들 안 죽이고 심으면 나중에 그 놈들이 고구마 다 먹습니다.” 결국 고구마 심기 전에 밭에다 농약을 사다 뿌리란 이야긴데, 농사 목적이 수확이 아니어서 그냥 되는 대로 거두겠다며 사양했다. ‘제초제 정도나 뿌리고 고구마에는 농약 안 친다더니… 그 땅에다 농약을 뿌리는구나….’이 생각까지 드니 직접 고구마 농사 짓기로 한 게 잘한 일이다 싶었다.

너른 밭에 아들을 풀어놓자 예상대로 사정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흡사 너른 초원을 누비는 한 마리의 망아지였다. 입고 버려도 좋을 옷과 신발로 무장 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안 누나들과 어울리며 이랑을 넘어 다녔다. 같이 소꿉장난도 했다. 이날 아침 트랙터가 이랑을 타면서 땅 밖으로 나온 듯한 개구리를 보자 아이들을 포함한 6명의 아이들은 열광했다. 아들은 그 옆에서 두 발로 폴짝폴짝 뛰는 시늉까지 했다.

‘남이 해주는 밥’보다 더 맛나는 밥이 이렇게 밖에 나와서 먹는 밥이다. 육아 이야기로 또 사람 사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며 우리는 연천 고구마 밭에서 파리지엥처럼 점심을 먹었다. 3시간 동안.

이날 아이들을 봐 가며(이 경우 일의 효율은 대단히 낮아진다) 어른들은 순수 노동 4시간 정도에 점심 먹는 데 3시간 가량을 썼다. 일을 했다고 해야 할지 어울려 놀며 바비큐 파티를 했다고 해야 할지 헷갈릴 정도. 하지만 분명 두둑을 만들고 물을 뿌려 비닐을 씌웠으며, 그 위에 순을 사선으로 찔러 심고 다시 물을 주는 일로 완성되는 고구마 농사의 구할을 해치웠다. 또 아이들은 너른 들판을 뛰어 다니며 평소 쉬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모두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것들이다.

‘여보, 계산기는 적당히 두드립시다.’

msj@hk.co.kr

|||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