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국장 행사장인 싱가포르국립대학 문화센터(UCC)에 장남인 리셴룽(李顯龍, 가운데) 현 총리 등 유족들이 리 전 총리의 영정과 함께 도착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가 23일 세상을 떠났다. 리콴유는 덩샤오핑, 박정희와 함께 동아시아적 발전국가 리더십의 전형이었다. 발전국가는 개발독재의 다른 이름이다. 민주주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 중시했던, 서구적 가치보다 아시아적 가치를 더 강조했던 리콴유에 대한 평가는 국가발전 목표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발전의 목표가 경제성장에 있다면,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한 정치가다. 하지만 그 목표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동시발전에 있다면, 그는 일방적으로 고평(高評)하기는 어려운 지도자다.

후발 자본주의 발전에서 리콴유가 이끌었던 ‘싱가포르 모델’은 명암이 분명한 전략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리콴유가 추진한 친기업·반부패 정책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살고 투명한 나라로 만들었다. 동아시아 신흥공업국 ‘네 마리 작은 용(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가운데 싱가포르는 1인당 GDP 5만 달러에 가장 먼저 도달했다. 말레이반도 끝에 놓인 한갓진 섬나라에 불과했던 1960년대의 과거를 돌아보면 기적에 가까운 성공을 일궈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동시에 싱가포르 모델은 그늘이 작지 않다. 정치적 측면에서 싱가포르는 여전히 한 정당이 시민사회를 지배하는 권위주의 국가이며, 집회·결사·언론의 자유 등 국민 기본권 또한 크게 제한돼 있다. 사회적 측면에선 빈부격차도 큰 문제다. 2013년 싱가포르 지니계수는 0.478을 기록했고, 전체 인구의 10~12%가 1,000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야말로 싱가포르 모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리콴유가 평생을 거쳐 추구한 국가 목표는 일관된 부국(富國) 노선이었다. 나라를 부강할 수 있게 한다면 그는 민주주의를 유보하더라도 주저 없이 그 길을 따라갔고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강소국 싱가포르 모델은 다른 나라에 그대로 이식하기 어렵다. 500만이 겨우 넘는 도시국가라는 조건은 싱가포르식 발전전략에 유리한 조건을 이뤘지만, 인구 규모가 큰 경우에는 산업구조와 사회갈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벤치마킹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주목할 것은 싱가포르 모델이 이런 문제를 갖고 있음에도 싱가포르식 부국 노선과 이를 추진한 강력한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런 그리움의 원인은 현재에 대한 불만에 있다. 과거에의 그리움을 갖는 것은 그 시절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가 곤궁(困窮)할수록 과거에 대한 그리움 또한 커지는 법이기도 하다. 프로이센 비스마르크의 부국강병 모델에 기원을 두는 싱가포르식 발전전략이 정보사회가 진전하고 시민사회가 다원화된 21세기에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저성장, 심화되는 빈부격차, 활기 잃은 시민사회의 현재적 상황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문제의 핵심은 싱가포르와 함께 발전국가의 대표 사례였던 우리나라의 경우 발전국가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발전모델을 여전히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발전전략을 이끌어갈 정치적 리더십 또한 부재하다는 데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제시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소득 주도 성장, 포용적 번영 등의 담론을 지켜볼 때, 새로운 발전모델은 성장과 복지를 효과적으로 결합하는 전략이 돼야 한다. 그리고 좋은 정치적 리더십이란 성장과 복지에 대한 일관된 철학을 요구한다. 성장과 복지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불가능하고, 복지 없는 성장은 결코 소망스럽지 않다.

리콴유의 죽음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상징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싱가포르 모델은 역사적 사명을 다한 모델이다.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함께 일궈내는 21세기에 걸맞은 그런 정치적 리더십을 고대하고 소망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관련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