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32. 아이라는 거울

“비켜~”- 아들

‘뭐? 비키라고? 풉. 어쩌다 만들어진 소리겠지….’ - 이 아빠 혼자 생각

(잠시 후 다시)“비~켜~, 비~이~껴~”- 아들

어쩌다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이 아빠한테 하는 말이었다. 입으론 저 소리를 만들어 내면서 손으론 책상의자에 앉은 아빠를 미는, 정확한 의도를 갖고 하는 말이었다. 이전까지 지껄이던 소리라고 해봐야 ‘이게 뭐야?’정도였고, 아는 물건이 시야에 들어오면 아무런 맥락도 없이 그 이름을 반복해서 외치던 수준의 녀석이….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놈이 어떻게 이 말을 할 수 있게 됐을까. 아들을 사이에 눕혀 재우고 아내와 지난 시간들을 복기했다. 이 아빠 기억으로는 쓴 기억이 거의 없는 단어이고, 적어도 아들이 듣는 데서 사용한 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엄마가 의심된다’고 하자 아내가 펄쩍 뛰었다. 더더욱 그런 말을 쓸 일이 없고, 아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가 알지 엄마가 어떻게 알겠냐며 화살을 돌렸다.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아들이 그 단어를 구사한 상황을 보면 그냥 넘기기엔 좀 아까웠다. 말문이 트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기를, 의사소통이 돼서 징징대거나 떼쓰는 시간이 줄길 바라는 마당에 가르치지도 않은 말을 이토록 정확하게 사용하다니! 그 습득 과정을 되짚으면 말을 익히는 훌륭한 방법이 되겠다 싶었다.

어린이집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면서 배운 새로운 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는 모습을 보면 새삼 말도 경험이 동반될 때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는구나 싶다. 사진은 혼자 놀던 아들이 종종 보는 누나와 어울려 노는 모습. 저들끼리 부대끼면서 아빠가 알려주는 것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19개월 된 아들이 언제 어떻게 저 말을 배웠을까. 아내와 거의 동시에 어린이집을 지목했다. 3월초부터 다니기 시작한, 머무는 시간 그리 길지 않지만 100%의 출석률로 나가고 있는 곳이다. 특히 만 2세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고, 말 잘하는 형 누나들과 같이 놀면서 자연스럽게 익혔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봤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선생님은 언어발달 과정상 모방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그때그때 “비켜줄래~”로 잡아주고 있다고 했다. 추측이 맞았던 셈이다.

형 누나들을 따라 하는 것도 따라 하는 것이지만, 우리 부부는 말뿐만이 아니라 체험, 경험이 동반됐기에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배울 수 있었다는 자체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가 비켜라는 소리와 함께 아들을 밀었고, 밀린 아들이 ‘비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으며, 자신의 말로 만든 아들이 제 아빠에게도 적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니 적지 않은 후회가 든다. 이 아빠가 지난 육아휴직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했구나 하는 아쉬움이다. 아들이 딴 건 몰라도 말을 조금 더 빨리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틈나는 대로 설명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정작 말을 익히는 데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가령 아들에게 “여기서 저리로 가고 싶은데 그 길목에 다른 친구가 앉아 있으면 ‘비켜줄래’라고 하는 거야”하고 설명하는 식이었다. ‘애들한텐 자꾸 말을 걸어줘야 한다. 대꾸를 해줘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이 아빠도 별 생각 없이 말만 많이 해줬을 뿐, 말과 함께 거기에 맞는 몸짓은 해 보이지 못했고, 체험은 시키지 않았다.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우리 부자가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은 확연히 늘었다. 하지만 아들이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예전처럼 온종일 보내는 경우는 드물다. 친구들이 더 좋아지는 때가 오면 아빠랑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욱 드물어질 것이다.

비교적 또렷하게 구사하는 말에는 ‘비켜’만 있는 건 아니다. 헤어질 때 살짝 펼친 손을 돌리며(흔들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소리로 내는 ‘아안(녕)’하는 인사말도 있다. 이 역시 “친구랑 헤어질 땐 이렇게 손을 흔들면서 ‘안녕~’ 하는 거야”라며 이 아빠가 수 없이 설명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것도 이럴게 아니라 아들이 보는 데서 사람들 만나고 헤어질 때 이 아빠가 더 큰 목소리로, 더 큰 몸동작으로 반갑게 인사 나눴더라면, 그래서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설명하면 알아듣겠지 하는 착각과 욕심이 컸다.

상대와의 관계를 막론하고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는 아들 보기가 뭣해 얼마 전부턴 다른 인사를 가르쳤다. “00(아들)보다 큰 사람한테는 이렇게 허리를 숙이고 ‘안녕히 계세요’ 하는 거야” 하는 식이다. 설명과 강요(?)가 반복된 덕분인지 최근엔 손을 흔들며 인사 하다가도 고개를 앞뒤로 까딱거리면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각도는 영 시원찮다. 아파트 청소하는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 요구르트 아줌마, 길다가 만나는 이웃들, 어린이집 선생님들한테 이 아빠가 고개를 ‘까딱’거리는 딱 그 만큼이다.

아이들이 어른들 모습 비추는 거울이라더니, 아들을 통해 이 아빠의 뻣뻣한 모습을 확인한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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