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스스로 선출방식 만드는 정개특위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고’로 끝날 듯

독립적 제3자의 판단과 결정 존중해야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지난 18일 첫 회의를 열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이기 위해서다. 법은 개정되어야 하고, 내년 4월13일에는 제20대 총선을 치러야 한다. 인구편차 3대 1까지 이르는 현재의 선거는 유권자의 가치가 달라지는 결과여서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정개특위는 8월까지 공명정대하게 일을 매듭짓겠다고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들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 정개특위 위원들, 스스로도 그럴 것이다.

옛 이야기를 생각한다. 넓은 땅을 가졌던 사람이 세상을 떴다. 욕심 많은 아들 둘을 두었던 그는 “다투지 말고 합의하여 땅을 나눠 갖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두 아들은 땅 지도를 갖다 놓고 ‘줄 긋기’를 시작했다. 넓은 대지에는 전답은 물론 우물과 개천도 있었고, 목장과 목초지도 있었다. 이들은 전답은 위치에 따라 수확량이 다르고, 우물과 개천의 수량(水量)은 차이가 있으며, 목장과 목초지는 주변상황이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형제는 줄 긋기에 합의하지 못했다.

마을사람들이 나섰다. 이리하자 저리하자, 이제 좋다 저게 좋다, 건의와 훈수가 이어졌지만 두 형제는 납득하지 못했다. 이해관계가 없으며, 모두가 권위를 인정하는 제3자에게 맡기기로 하고, 옆 마을 촌장을 찾아갔다. 두 형제는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설명했다. 양측 주장을 들은 촌장의 결정은 간단했다. “형이 줄을 긋고, 동생이 선택하라.” 형은 (혹 동생이 좋은 쪽을 가져갈까)심혈을 기울여 공평하게 줄을 그었다. 둘 다 불평을 말할 수 없었다.

선거구 조정을 싸고 여와 야, 의원과 후보자, 현직 의원들끼리, 충혈된 눈치싸움이 심각하다. 지역 주민들의 이해까지 얽혔으니 합의가 제대로 제때에 나올 리가 없다. 선거구 인구가 많은 곳을 쪼개거나, 적은 곳을 통폐합해야 한다. 결국엔 당사자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할 것이다. 통폐합엔 반대자가 많아도 쪼개는 데는 불평이 적다. 늘어나는 의원들 비용은 5천만 국민들로부터 조금씩 뜯어내면 그만이라는 속셈이다. 그 동안 수 차례 유사한 시도가 있었지만 으레 그렇게 해왔다.

중앙선관위의 공개적인 제안이 나오자 여야 의원들이 서둘러 정개특위를 구성했다. 헌재가 시한을 정한 14개월 가운데 거의 5개월을 허송했다. 특위 활동 시한도 불과 5개월 남짓 남았다. 합의가 안되면 자리만 늘려서 ‘2대 1’의 결정을 지키면 된다는 속셈이 읽힌다. 특위는 선거구 획정에 국회의원을 관여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을 하지만 국민은 물론 특위위원 스스로도 믿지 않는다.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독립되고 권위 있는, 제3자의 건의에 따르는 게 마땅하다. 선관위가 내놓은 의견은 전체 국회의원 수를 그대로 두고 헌재의 유권자 평등권을 담보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민의 공감대와 일치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의원들이 스스로 만든 선거구획정위원회 관련 법규정부터 수정해야 한다. 위원회를 국회의 영향권 아래 두어서는 안 된다. 제3자인 선관위 주도로 위원회를 만들고 오히려 국회는 그 결정을 따르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선관위가 입법ㆍ행정ㆍ사법부에 이어 헌법재판소와 함께 우리나라의 ‘5부(府)’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선거 때가 되면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줄 알고 있다. 의원정수 조정이나 선거구 개편 등 이번 정개특위의 주요 임무는 오히려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가 본질인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국민을 위해 법을 만드는 일은 국회의 몫이지만 의원을 선출하는 규칙과 방법까지 스스로 정하게 해선 곤란하다. 게임의 규칙을 선수들에게 일임해 놓는다면 그것 만드느라 게임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앞서의 얘기처럼 ‘줄을 긋는 권한’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구분하는 것이야 말로 견제와 균형의 기본이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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