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서 또 확인한 극도 언론 불신

‘이완구 녹취파일’件서 본 다른 이유

입장 따라 사실 달리보는 풍토도 문제

김영란법은 확실히 변혁의 힘을 가졌다. 물론 문제는 많다.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건, 사회진화에 그쯤은 통과의례로 감당할만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세월호 참사도 일상화된 부패구조의 산물이 아니던가.

주변엔 의외로 반대론자가 많다. 직업상 정치인, 관료, 기업인 등 이해가 직접 닿는 이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일 것이다. 고약한 건 은근한 원망이다. 한국일보로 촉발된 ‘이완구 김치찌개’가 공연한 동력을 제공했다는 식의. 원망은 곧 언론의 부도덕, 정파성, 취재윤리 부재 등에 대한 걱정(사실은 즐기는)으로 이어진다.

반박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건전한 중도를 취하고 바른 기자문화를 자부해온 입장에선 뼈아프다. 이 참에 ‘이완구 녹취파일’ 설명을 굳이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지난 일을 꺼내는 게 마땅치 않지만, 한번쯤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과도하게 의도성이 부풀려진 ‘해석’이 ‘사실’로 남게 될 터이므로.

당시 사안의 핵심은 녹취와 비(非)보도, 녹취내용 전달행위다. 추후파장으로 보아 처음 비보도 판단은 안이했다. 하지만 현장의 보수ㆍ중도ㆍ진보지 기자들이 공히 같은 판단을 했듯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다. 발언자의 상태나 분위기 등 비언어적 요인들을 과하게 평가했던 게 착오였다. 녹취내용 전달행위는 좀더 변명이 군색하지만, 기자가 쓸모 있는 정보를 얻을 요량으로 쓸모 없어진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다뤘다는 게 문제였다. 역시 심각한 의도는 없었다는 뜻이다.

의도 판별에 중요한 요소는 또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 터치가 바로 녹취다. 대학 때 강의내용을 폰에 저장하는데 익숙한 젊은 기자들에겐 취재도 마찬가지다. 수첩보다 정확하고 편한 방식일 뿐이다. 당시 현장서 다들 그랬듯. 실제로 많은 취재원들이 “사석에서도 녹음을 염두에 둔다”고 말한다. 이완구 후보자야 워낙 흥분상태여서 깜빡 했을 테지만.

녹취 전달도 카톡 등으로 보내면 그만이다. ‘건수’임을 감지한 정치꾼의 ‘한번 들어나 볼까?’식 유도에 경험 얕은 초년기자가 쉬 말린 것이다. 녹음기를 품에 감추고, 밤 새워 녹취록으로 풀어내 은밀히 전달하던 예전 아날로그시대의 음습한 장면을 연상해선 사안을 잘못 보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얘기지만 차제에 시대변화로 달라진 이런 취재문화를 언론계와 학계에서 진지하게 다뤄 명확한 기준을 새롭게 세울 필요가 있다. 어디까지가 취재윤리상 정당하고 용인할만한 수준인지를. 그러지 않으면 이런 논란은 언제든 재발할 여지가 크다.

어쨌든 당시 이 사안을 놓고 속내 다른 상반된 비판들이 쏟아졌다. 비보도에 주목한 이들은 정권에 대한 아부, 친여지(親與紙)의 숨은 본색이라는 등으로 몰아 부쳤다. 반면 녹취내용 전달에 초점을 맞춘 이들은 야당과의 밀약관계, 영락없는 좌파지라고 질타해댔다. 한 신문의 정체성 모순이 어색했는지 곧 절묘한 조합이 나왔다. 비보도에 저항한 기자의 용기 있는 전달행위라는. 이번엔 비난과 칭송이 동시에 쏟아졌다. 그러나 말했듯 다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결코 잘못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비껴가지 않고 정면으로 이 문제에 대처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1면에 즉각 사과 사고(社告)를 내 한국일보 기자임을 스스로 먼저 밝혔고, 논의를 거쳐 후속조치도 합당한 수준으로 마무리 지었다.

김영란법 입법과정에서 드러났듯 언론에 대한 불신과 반감은 거의 임계점에 달해있다. 취재보도를 빙자해 사익(社益과 私益)을 취하고, 작은 향응에 취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왜곡한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태반의 이유를 언론 스스로가 제공했다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론불신에는 다들 제 입장에 따라 믿고 싶은 것만 보고, 짐작과 해석을 사실로 만들어 비난하는 수용자들의 비이성적 ‘의도’들도 분명 한 축을 이룬다는 점을 외면해선 안 된다. 지난 칼럼에 ‘국민은 딱 제 수준의 정부를 갖는다’는 명제를 인용했지만, 언론이라고 다를 리 있을까.

주필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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