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SNS)사람 인터뷰] (12) 초단편영화 감독 이신혁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소통의 큰 축이 된 지 오래죠. 남다른 안목과 친근한 매력으로 온라인 세상에서 맹활약 중인 ‘소셜 스타’들을 한국일보닷컴에서 만나 보세요. 정보와 삶이 녹아 있는 디지털스토리텔링 기획 인터뷰 ‘눈(SNS)사람’입니다. 코너 페이지(interview.hankookilbo.com)에선 연재물 전체를 모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지난 9일 오후 서울 신당동 언덕배기 ‘꼬레아트’ 3층 연습실. 드럼ㆍ건반이 경쾌하게 노래를 열어젖히자 “셋, 넷” 하는 젊은 지휘자의 신호와 함께 10명 남짓 남녀 배우들 목소리가 반주와 어울린다. “이곳은 소리 없는 전쟁터. (중략) 좀더 높은 곳을 위해 어떻게든 바쳐야 해.” 우렁찬 합창이었지만 지휘자는 불만이다. “현장에선 MR(반주)을 먹어야 해.”

세칭 ‘천재 예술가’ 이신혁(21). 그는 전주 우석고 2학년생이던 2011년 여름 ‘하이스쿨 잼’(고교 즉흥 합주)이란 4분짜리 동영상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 볼펜을 누르거나 책장을 넘기고 책상을 두드릴 때 나는 고교 교실 내 일상적 소음들이 저 뮤직 비디오 영상에선 박자 맞추는 데 필수적인 타악기 소리로 변신한다. 그럴듯한 음악, 빼어난 만듦새가 발상과 조화하자 대중은 열광했다.

때아닌 함박눈이 펑펑 내렸던 9일 초단편영화 감독 이신혁은 서울 신당동 연습실에서 25일 대학로 무대에 올릴 창작 뮤지컬 ‘사거리’ 완성을 위한 막바지 연습 주도에 여념 없었다. 그가 맡은 역할은 음악 감독이다. 대학 3학년생이 맡기엔 중책이다. 그를 소개하려고 배우들이 일렬로 섰다 옆으로 비키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다. 마침 이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자기를 눈 여겨 본 입학 사정관한테 뽑혀 이듬해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진학한 저 신동(神童)은 지금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변신해 고교 현실을 소재로 한 데뷔작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기성 배우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노마드(유목민)다. 두 해 전 유명 오락프로그램인 MBC ‘무한도전’에 영상이 소개된 그는 곡뿐 아니라 글도 쓰고 노래에도 능숙하다.

쾌락주의자이기도 하다. 시장보다 자기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이것저것 끊임없이 창작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 고통을 견디란 흔한 주문(注文)에서 그는 자기 착취의 쳇바퀴 속으로 청춘을 밀어 넣는 자본주의의 주문(呪文)을 떠올리지만, 다른 이들 삶에 간섭할 마음이 아직 없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저 개인주의자 작품을 보려고 수만명이 기다린다.

특유의 다재다능으로 21세에 뮤지컬 음악 감독을 맡게 된 이신혁은 고교 때 이미 스타였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서곡

Q 영상물들을 보면 대부분 ‘프로젝트SH’란 워터마크가 찍혀 있다. 이름 이니셜인 듯한데.

A 고교 다니는 동안 재미있는 거 하나 해보잔 생각에서 개인 별명으로 만든 게 프로젝트SH다. 스무 살 이후엔 제작 흐름에 따라 창작 집단을 꾸렸고 저 이름을 그대로 썼다. 멤버는 모두 9명인데 다양한 계기로 친구가 된 이들이다. 내 역할은 대장 겸 감독이다. 나이 많은 스태프도 내 지시를 따른다. 결과물에 만족해선지 아직 쿠데타가 일어난 적은 없다. (웃음)

25일 초연되는 뮤지컬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이신혁과 배우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대표작 몇 편을 꼽는다면.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나. 일관되게 담으려는 메시지나.

A 아무래도 ‘하이스쿨 잼’ 1, 2편에 가장 애착이 간다. 1편은 내가 만든 첫 뮤지컬 영화다. 이들을 통해 지금 인지도가 형성됐다. ‘캐릭터 캠퍼스’도 호응이 컸다. 일상적 소재를 코믹하게 각색한 줄거리가 공감을 얻은 듯하다. 내 작품들은 밝다. 하지만 반응은 달랐다. ‘알콜전쟁’ 보고 ‘술 마실 수밖에 없는 슬픈 청춘’이란 식이다. 의도한 게 아니다.

Q 뮤지컬 음악 감독까지 맡았다. 어찌 된 건가. 곡도 좋고 지휘도 잘 하더라. 처음 아닌가.

A 어릴 때부터 틈날 때마다 뮤지컬을 관람했다. 안 되면 영화라도 봤다. MP3플레이어엔 곡을 넣고 다녔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인 ‘렌트’는 바이블이다. 이번에 음악을 맡은 작품은 동명 청소년 영화 원작의 ‘사거리’다. 작년 12월 제안이 왔다. 한 달 간 혼자 17곡을 쓰고 편곡ㆍ녹음했다. 지휘도 배웠다. 25, 26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된다.

긍정적 분위기의 작품을 보고 더러 슬프단 반응을 보이는 이가 있단 게 이신혁은 신기하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1막

Q 고교 때 만들어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영상이 하이스쿨 잼이다. 탄생 비화를 들려달라.

A 뮤지컬을 워낙 좋아했다. 늘 만들고 싶었다. 1편 만든 게 2학년 때인데 지식이 전무했다. 고향 전주엔 조언 구할 사람도 적었다. 학교 연극부와 댄스부를 찾아가 배우 섭외를 시작했다. 매달리다시피 20명쯤 모았다. 점심 시간에만 찍다 보니 제작 기간도 길었다. 속편은 좀 수월했다. 영상으로 대학에 붙은 뒤 학교와 담판 짓고 주말마다 학교를 빌릴 수 있었다.

이신혁이 음악 감독을 맡은 ‘사거리’는 고교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다룬 창작 뮤지컬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작품 배경이 모두 학교다. 고교생 감독 한계인가. 아니면 작심하고 비판하기 위해서였나.

A 학교가 좋아 일진도 ‘빵 셔틀’도 없었다. (웃음) 반항심이 없진 않았다. 평범한 걸 싫어하는데 남들과 똑같은 머리모양을 해야 했고 번호로 불렸다. 하지만 대변하고 싶단 생각이 더 컸다. 최대한 많은 친구들 얘기를 담고 싶었다. 내 영상 커리어는 성장 과정과도 같다. 고교생 얘길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는 고교생이다. 대학에서도 욕심 안 부릴 거다.

Q 세칭 천재다. 재능에 상상력까지 갖췄단 평가다. 빨리 많은 걸 이뤘다. 어떻게 생각하나.

A 하고픈 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스스로 음악을 익혔다. 게임도 만들어봤다. 고1 때 우연히 캠코더가 보였다. 친구들끼리 보고 즐길 심산으로 단편 하나 찍었는데 입소문이 퍼졌다. 포텐(잠재력)이 터진 느낌이었다. 재능보단 노력과 근성 같다. 많이 듣고 봤더니 무의식적으로 됐다. ‘덕후’(오타쿠ㆍ한 분야에 집중하는 사람) 기질이 불러온 결과다.

“‘덕심’(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마니아 기질)이 충만하면 없던 재능도 생기는 것 같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인터미션

Q 인간 이신혁에 대해 얘기해보자. 대학 생활 재미있나. 팬도 많을 텐데. 관리하거나 하나.

A 확실히 살판났다. (웃음)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으니까. 고교 땐 잔병치레가 많았지만 대학 와선 한 번도 아픈 적이 없다. 정신적 요인이 큰 것 같다. 낮술도 좋아한다. 특히 사람 소개 받는 게 좋다. 연애도 한다. (9일 현재 만난 지) 324일 됐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팬에겐 SNS를 통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한다. 동료가 될 수 있는 분들이다.

배우들과 함께 뮤지컬 음악 완성도를 점검 중인 이신혁.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요즘 대학생 당면 현안은 취업이다. 사회 부조리가 외면 당하는 이유다. 다룰 생각 없나.

A 긍정적인 작품을 주로 만들긴 하지만 아예 사회 문제에 관심 없는 건 아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다루기엔 아직 내가 부족하다고 판단할 뿐이다. 언젠가 얘기할 때가 올 거다. 이와 별개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눈치 보며 너무 일찍 체념하고 세상과 타협해버리는 대학생들 모습은 안타깝다. ‘아프니까 청춘’이란 말로 필요 이상 고통을 합리화하는 것 아닐까.

기발한 발상으로 해석한 일상을 천부 재능으로 각색할 수 있단 게 이신혁의 남다른 재주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2막

Q ‘일상 재해석’이 주된 모티브 같다. 현실ㆍ환상을 섞기도 한다. 작품 세계를 요약하면.

A 일상은 뻔해 보이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새로운 얘기들을 쏟아낸다. 장난 소재로도 훌륭하다. 말도 안 되는 농담(‘만우절인데 뭐 없어?’)이나 비유(‘낙서 02 산’)를 실제 세계로 끄집어내는 상상은 짓궂지만 즐겁다. 작품으로 전하고 싶은 건 우리가 잘 놀 때 발산되는 분위기다. 감동 그 자체가 생각거리보다 우선이다. 딱히 메시지를 생각하진 않는다.

Q 17곡을 한 달 만에 만들 정도면 엄청난 실력 아닌가. ‘통화 중’에선 화성도 잘 쓰던데.

A 내용이 떠올라야 멜로디를 쓸 수 있는 스타일이다. 멜로디가 머릿속에 줄 서 있는 건 아니다. 이번 뮤지컬 작업은 도전이었다. 급한 맘에 실수로 표절할까 봐 참조도 하지 않았다. 음악 교육을 받은 건 7살 때 피아노학원 잠깐 다닌 게 전부다. 외려 화성학을 제대로 배웠으면 독창성이 떨어졌으리라 평한 전문가도 있었다. 그냥 예쁘게 나오는 소리를 쓸 뿐이다.

이번에 뮤지컬 음악 감독을 맡은 뒤 이신혁은 부랴부랴 지휘를 배웠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영상 촬영, 편집도 다 도맡나. 기획은 물론일 테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궁금하다.

A 그런 편이다. 당일까지 무슨 작품인지 모르고 참여하는 스태프도 있다. 영상보다 음악이 먼저다. 곡을 스케치해놓고 그림을 구상하는 경우가 많다. 계획과 대본에 충실하기보다 현장 분위기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애드리브도 요구한다. 필요한 경우 콘티를 짜기도 하지만 머릿속 구상에 의존할 때가 많다. 즉흥적이다. 다만 촬영은 원하는 그림 나올 때까지 한다.

Q 영상 퀄리티와 인기가 꼭 비례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하다.

A 동의한다. 나보다 더 질 높은 작품을 제작하면서도 주목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자기 만족이 크다. 장인 정신이랄까. 1차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좋다. 2차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해주면 또 좋지만. 창작자들을 맥 빠지게 하는 건 ‘페북(페이스북) 거지’들이다. 성인광고 따위를 붙이면서 출처도 안 밝히고 사전 승인 없이 무단 도용한다. 조회수는 더 많다.

Q 최근 공개한 ‘낙서 03 봉인해제’는 아주 짧다. 달라지고 있는 건가. 더러 실패도 하나.

A 시인 하상욱씨가 한 마디로 시를 풀어내듯 놓치기 싫은 매력적 아이디어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대학생이 된 이상 ‘고교생치곤 잘 만들었네’ 하며 너그럽게 봐주던 시각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부담이 커졌다. 내게 매기는 기준 역시 높아졌다. 내가 만족한 작품에 대한 주변 반응이 나쁠 때 가장 힘들다. 함량 미달 작품에 만족했단 자책감이 크다.

이신혁에겐 직업이 목표가 아니다. 자신이 만족 가능한 작품을 꾸준히 만들고 싶을 뿐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커튼콜

Q 뮤지컬 음악을 맡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고 있고 영상 연출력도 발군이다. 목표가 뭔가.

A 주목 받고 인정받는 걸 정말 좋아한다. 영상 창작에 빠진 건 무대 앞에 서는 데 재능 없다고 판단해서다. 뮤지컬 제작도 오랜 꿈이었다. 하지만 목표로 삼는 직업은 없다. 꾸준히 내 손에서 뭔가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건 한량(閑良) 백수다. 잠깐 직업을 가질 순 있다. 어떤 계층 누굴 만나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인생 목표다.

뮤지컬 연습 도중 휴식 시간을 활용, 배우들이 이신혁을 소개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무한도전 출연 뒤 김태호 PD에 버금갈 ‘리틀 김태호’로 불리기도 했다. 롤모델은 있나.

A 김태호 PD의 관심을 받은 건 영광이었다. ‘수능도 끝났는데 프로젝트SH 신작 안 나오나’란 멘션이 먼저 왔다. 녹화 전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하지만 김 PD와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 내가 조언을 원하는 타입도 아니다. 누구처럼 돼야겠단 생각을 한 적 없지만 존경하는 인물은 뮤지컬 렌트 제작자 조나단 라슨이다. 열정 강한 박칼린씨도 좋다.

Q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것 같다. 멋지긴 한데 실제 곤궁하게 살아도 상관없나.

A 상업적 이득을 취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웃음) 내 재능을 가치 있게 파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예술가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느 한 곳에 구애돼 살고 싶진 않다. 그래서 직함을 물어보면 ‘보헤미안 지망생’이라 답하곤 한다. 어디에도 속할 수 있지만 어느 한 곳에 물들지 않는 이가 보헤미안이다. 난 인생을 극적으로 살고 싶다. 지금 행복해야 한다.

배우들의 찬사가 버거운 이신혁이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k.co.kr

김지현 기자 hyun1620@hk.co.kr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k.co.kr

디자인

백종호 jongho@hk.co.kr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k.co.kr

속기 및 보조

김진솔 인턴기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 4)

이유민 인턴기자(서울여대 언론홍보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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