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최근 미국 교과서에 수록된 일본군 위안부 관련 내용을 바로 잡겠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미국내 역사학자들의 비판이 들끓고 있다.

발단은 아베 총리가 지난 달 29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에 대해 “일본군이 최대 20만명에 달하는 14~20세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모집ㆍ징용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지적에 경악했다”고 언급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이어 “정정해야 할 것을 국제사회에서 바로 잡지 않은 결과 미국에서 이런 교과서가 사용됐다”며 해당 출판사에 소송할 의사도 밝혔다.

이에 미국 코네티컷대학 알렉시스 더든 교수 등 미국역사협회(AHA) 소속 역사학자 19명은 ‘일본의 역사가들과 함께 서서’라는 성명서를 통해 “국가나 특정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 아래 출판사나 역사학자들에게 연구결과를 바꾸도록 압력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견해를 둘러싼 학자들의 논의를 바탕으로 쓴 교과서 내용을 소송을 통해 바로 잡겠다는 아베 정권의 생각에 더욱 경악한 분위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서는 이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일본 우익 단체가 제기한 별 건의 소송이 진행중이다. 극우단체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연합회 회원들이 글렌데일시가 세운 위안부 소녀상이 미국 연방정부만이 가지고 있는 외교권한을 침해했을 뿐 아니라 미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해 2월 미 연방지법이 “소송의 원안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소송각하 결정에 불복해 항소했고 지금까지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우익성향 의원들이 글렌데일시를 직접, 방문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 위안부의 진실이 호도되고 있다는 식의 광고를 내는 일도 흔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일본의 만행이 급속히 퍼지는 것을 두고 원격지 민족주의와 관련된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원격지 민족주의는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유명해진 베네딕트 앤더슨 코넬대 교수가 주장하는 지론으로, 미국 등으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정신적 존립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는 내용이다.

일본 우익세력들은 이 견해를 치환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미국으로 이주해온 한인 주민들이 미국 사회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위안부를 이용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 우익들은 미국 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내용이 실린 것이나, 글렌데일시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된 것도 재미 한인들의 로비활동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

일본 우익들이 미국내 위안부 관심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베 총리가 강조하는 미일동맹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은 스스로 미일동맹을 자처하며 침략국가라는 과거에서 탈피,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이런 일본의 팽창정책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익들은 우려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위안부의 강제성을 사죄한 고노담화 발표에 한국 정부가 개입한 인상을 지웠다는 식의 검증 결과 발표와 아사히신문이 제주에서 여성을 상대로 위안부 사냥을 했다는 일본인 작가 요시다 세이지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한 기사를 취소한 것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전쟁중 발생한 심각한 여성 인권 침해’라는 사건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데도 극히 일부 증언 자료가 잘못됐다는 것만을 강조, 위안부 전체가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는 경향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가 확산되고 있으니 우익세력들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소송을 제기하고, 교과서 수정을 요구할수록 미국내 반응은 더욱 냉담하다.

하지만 의외로 해결책은 가까이에 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강압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이런 반성의 토대에서 과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알리고, 마지막으로 팩트와 상충되는 일부 문제점을 지적했다면 지금처럼 위안부 문제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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