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SNS)사람 인터뷰] (11) 더빙 크리에이터 유준호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소통의 큰 축이 된 지 오래죠. 남다른 안목과 친근한 매력으로 온라인 세상에서 맹활약 중인 ‘소셜 스타’들을 한국일보닷컴에서 만나 보세요. 정보와 삶이 녹아 있는 디지털스토리텔링 기획 인터뷰 ‘눈(SNS)사람’입니다. 코너 페이지(interview.hankookilbo.com)에선 연재물 전체를 모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15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더빙 크리에이터 유준호. 의외로 내성적이고 신중한 성격의 청년이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 중인 그를 특가 판매하는 TV 홈쇼핑 상품 광고처럼 인터뷰 기사를 꾸며 봤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마누라가 두 손 모아 정성스럽게 주방을 정리할 때, 우린 한 손으로 손쉽게 주방을 더럽힐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용도의 재발견이다. 통상 양 손이 동원돼야 하는 날달걀 쪼개기를 한결 수월케 해주는 고마운 조리 도구가 이렇게 고약한 무기도 될 수 있다니. “계란으로 바위는 부수지 못해도 마누라 멘털은 부술 수 있습니다.” ‘계란 투척기’ 탄생이다.

길이가 불과 2분 남짓인 저 동영상의 조회수는 세계 최대 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서 20일 현재 물경 90만회에 육박한다. 오래된 미국 TV 홈쇼핑 광고 영상물에 새 목소리를 입혀 익살스런 패러디를 완성한 이는 자신을 ‘더빙 크리에이터’라 소개하는 26세 청년 유준호. 독특한 작품 활동은 실제 광고로 이어졌고 제품 매출을 400% 늘리는 개가를 올렸다고 한다.

유준호에게 팬들은 ‘누텔라(이탈리아산 초콜릿 크림 브랜드) 보이스’란 별명을 붙여줬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날카로운 풍자로 가득하다. “비싸게 산 에비앙 생수도 자기가 다 처마셔 버린다”는 힐난이 담긴 ‘노란 걸레’는 탐욕스런 현대인을 빗댄 우화와 다름 없다. 농담 외피 속에 도사린 저런 통찰은 시청자의 실소를 이내 폭소로 바꾼다.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과일을 내주죠. 하지만 이제 가루를 만들어 내주세요. 집에 빨리 가라고.”(‘사무라이 칼’) 이웃 간 불화로 붕괴돼 가는 공동체의 민낯과 위선 뒤에 숨긴 우리의 속내가 이 해설 속에 고스란하다. 지난 15일 서울 합정동 자택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더빙 작업이 이뤄지는 그의 방을 찾았을 때 과일 가루를 받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
유준호가 더빙 작업에 사용하는 35만원 상당 마이크는 애초 자기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군 복무 시절 월급을 모아 구입한 제품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엄청난 녀석을 소개합니다

Q 한동안 ‘더빙 아티스트’란 직함을 쓰더니 지금은 ‘더빙 크리에이터’다. 무슨 뜻인가.

A 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새로 입힌 영상물을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에 게시한다. 성우 말고도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호칭이 없었다. 그래서 찾은 말이 더빙 아티스트다. 국내에서 성우를 가리킬 때 ‘보이스 액터’(VA)와 함께 이 표현도 쓴단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이후 대안이 창작자를 통칭하는 크리에이터였다.

‘패러디 영상물의 인기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유준호는 “목소리보다 상황 재해석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전공이 디자인이고 단편영화 연출 경험도 있다. 어떤 계기로 더빙 영상 제작을 시작했나.

A 고교 때 하고 싶은 건 음악이었다. 쓴 곡을 직접 부르는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단 꿈을 키우기도 했다. 지금 쓰는 마이크도 원래 노래 녹음하려고 군대에서 월급 모아 샀다. 하지만 막상 들어보니 못 부르더라. (웃음) 뭘 할까 고민하다 목소리라도 알려보잔 생각에 지난해 2월 ‘겨울왕국’ 더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다른 재능이나 기술들도 차차 활용하려 한다.

Q ‘노란 걸레’, ‘사무라이 칼’ 같은 영상 조회수는 100만이 넘었다. 인기 비결이 뭔가.

A 처음엔 목소리가 통한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상황 재해석 능력이 핵심인 듯하다(유준호 작품 대부분은 미국 TV 홈쇼핑 광고나 국내 CF 등 기존 동영상 패러디다). ‘말맛’을 잘 살린단 칭찬도 듣는다. 광고주들의 공통된 평가다. 내용과 전달력 둘 다 해당하는 것 같다. 지금 추구하는 건 오직 재미지만 앞으론 ‘뭔가 남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유준호의 별명은 ‘누텔라 보이스’다. 초콜릿 크림처럼 달콤하단 뜻이 담겨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감미로운 ‘누텔라 보이스’로 당신의 귀를 녹여 드립니다

Q 별명이 누텔라 보이스다. 초콜릿 크림처럼 달콤하단 의미다. 경쟁력 있는 목소리 아닌가.

A 목표가 성우다. 3년 전 교회에서 성경 읽다 목소리 좋단 얘길 처음 듣고 꿈을 갖게 됐다. 감미롭단 말은 주로 여성들이 해준다. 그보단 1인 다역이 가능한데, 장점 같다. 본격 활동 전에 ‘리그 오브 레전드’(게임) 성대모사로 페이스북에서 뜬 적이 있었다. 당시 52개 역할을 했었고 그 덕에 ‘세븐 나이츠’ 전속 성우가 됐다. 게임 속 남자 목소리를 도맡았다.

방송사 공채 시험에 합격한 정식 성우는 아니지만 유준호는 화자 입 모양과 목소리를 일치시키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방송사 공채 시험을 통과하질 못했으니 ‘정식 성우’는 아닌 셈이다. 집착할 필요 있나.

A 아직 포기하진 않았지만 망설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막상 성우가 된 뒤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준비도 더 할 겸 3년은 응시 안 할 생각이다. 타이틀 없이 ‘언더 성우’로 활동하려면 욕 먹기를 감수해야 한다. 지망생들한테서 안 좋은 소릴 많이 듣는다. 섣불리 투덜댔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과한 적도 있다.

Q 새로 입힌 목소리가 그럴싸하게 들리려면 무엇보다 입 모양과 음성이 잘 맞아야 할 텐데.

A 신경을 많이 쓴다. 철칙이 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땐 절대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속마음을 독백처럼 중얼거리는 방식을 쓴다. 한 번 뻐끔거릴 때 두 단어를 발음하는 것도 금기다. 동물이나 아기를 소재로 많이 다루는 건 영상 제보가 많아서기도 하지만 더빙이 쉽단 장점이 있어서다. 어른은 말할 때 입 모양이 분명해 일치시키기 힘들다. 맞을 때까지 수정한다.

음이 소거된 상태의 영상물을 여러 번 반복 시청하면서 유준호는 새로 더빙할 이야기의 내용을 구상한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이 녀석은 다릅니다, 복근이 생길 수도 있어요, 너무 웃어서

Q 이야기를 보면 연기력은 물론 창작력도 발군이고 해설 역시 재치 있다. 어떻게 작업하나.

A 주로 내가 재미있게 본 영상에 더빙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 작업하는 영상은 대부분 제보된 것들이다. 직접 찍은 영상이 많이 의뢰된다. 하루 10여건씩 받다 보니 작년 7월에 받은 영상을 지금 올리고 있다. 신선한 이야기 구상을 위해 소리 없이 영상만 5번 정도 본다. 2분 안팎 긴 영상은 더듬지 않게 간단히 대본을 쓰지만 영상이 짧으면 즉흥적으로 녹음한다.

Q SNS에 올린 영상물이 300편이 넘는다. 어떤 조건을 갖춰야 히트하는지 이제 감이 잡히나.

A 일단 SNS엔 짧은 영상이 맞다. 대부분 2분 정도다. 길면 끝까지 안 본다. 소리와 상관없이 영상이 재미있으면 조회수는 올라간다. 드립(애드리브)은 간단하다. 공감되거나 참신하거나. 공감을 사려면 사람들 생각에서 5도 넘게 벗어나면 안 되고, 참신하기 위해선 179도까진 가되 180도를 넘으면 안 된다. 유튜브는 예상한 반응이 나온다. 페이스북은 모르겠다.

시청자가 참신하다고 무릎을 치는 이야기와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의 경계를 이루는 영역은 그리 넓지 않다는 게 유준호의 생각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자신이 연출 맡은 작품에 출연도 하는, 자기완결적인 콘텐츠를 만들고 싶단 욕심은 없나.

A 나중엔 시도할 거다. 더빙뿐 아니라 촬영과 편집도 할 줄 안다. 대학 때 두 편의 단편영화를 찍어봤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이다. 실제 맡기고 지원해줄 테니 직접 광고를 찍어보란 제의가 있었는데 사양했다. 자기 힘만으로 콘텐츠를 완성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결과가 자기 만족뿐이면 무슨 소용인가. 차근차근 한 가지씩 준비할 계획이다.

자기 방에서 콘텐츠 제작에 몰두하고 있는 유준호.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초판 제품이라 하자가 있을 수 있지만 걱정 마세요, 100% A/S!

Q 일부 성우 지망생의 질시로 오염됐을 수 있지만 잘 안 들리는 말이 꽤 된단 지적도 있다.

A 목소리가 저음이면 말이 뭉개져 상대적으로 전달력이 떨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톤 문제만은 아니다. 내 발음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더빙이 끝난 뒤 애매하게 들릴 수 있겠다 싶은 부분은 다시 녹음한다. 학원에 가 발음 교정도 받으려 한다.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나아지리라 낙관한다. 녹음실에 갈 때마다 좋아졌단 격려를 많이 받는다.

더빙 크리에이터로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게 유준호의 1차 목표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기존 영상을 재가공하는 게 주된 작업이니 저작권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없지 않을 텐데.

A 분쟁 걱정을 하지 않으려면 저작권 없는 영상을 쓰면 된다. 콘텐츠 제작에 주로 광고 영상을 활용하는 이유다. 정작 저작권 문제가 중요한 건 수익과 직결돼 있어서다. 권리를 침해하면 돈을 벌지 못한다. 창작물로 인정되지 않아서다. ‘능지처참 소시지’가 그런 경우다. 음악이 문제였다. ‘예빈이는 다 좋아’에서 발생한 이익도 전부 예빈이한테 돌아간다.

Q 지금이 더 완성된 성우나 더 독창적인 콘텐츠 제작자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일 수 있겠다.

A 꾸준히 활동하며 인지도가 커질수록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도 많아지는 것 같다. 어렵다. 일단 더빙 크리에이터로서 독보적 존재가 되는 게 목표다. 현재 CJ E&M과 파트너십 계약을 한 상태다. 저작권 문제 해결, 콘텐츠 유통, 구독자 관리 등을 CJ 측이 도와준다. 크리에이터 그룹 내에서 콜라보레이션(협업)이 활발히 이뤄지도록 다리 역할도 해 보고 싶다.

카페 테이블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준호. 김주영 기자 will@hk.co.kr

유준호를 프리, 무료로 드립니다, 미ㆍ친ㆍ사ㆍ장!

Q 얼마나 버는지 궁금하다. 유튜브로부터 받는 돈이 상당할 테고 광고 수입도 많을 듯하다.

A 지금 사는 집에서 같은 동네(서울 합정동) 주상복합 아파트로 이사하려면 8년여 동안 지금처럼 꾸준히 벌어야 하는 수준이다. (웃음) 활동 초기엔 한 달에 거두는 유튜브 영상 광고 수익만 수백만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국내 광고 더빙이나 출연료로 주수입원이 바뀌었다.

‘유준호 워너비’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아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유준호의 솔직한 답이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유준호처럼 되고 싶단 이가 분명 늘어가고 있을 텐데 이들에게 해줄 만한 조언이 있다면.

A 문의가 많이 오긴 한다. 무슨 장비를 쓰는지 여태껏 어떻게 살았는지 등을 묻는다. 하지만 내가 성공했단 생각은 아직 안 든다.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확신도 없고. 솔직히 예상보다 인기가 오래가는 듯해 불안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성실히 하되 나 별거 없단 단서를 다는 건 그래서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보단 함께하고 싶단 맘이 더 큰 게 사실이다.

“앞으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재능 기부 등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돕고 싶다”고 유준호는 밝혔다. 김주영 기자 will@hk.co.kr

Q ‘보이스 버킷 챌린지’(VBC)란 재능 기부 활동에 동참했다. 소외된 이들에 관심 있었나.

A 정기적으로 만나 직접 읽어주는 게 아니라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동화책을 전달하는 방식이어서 소소했다(VBC는 한국어 구사가 서툴러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데 곤란을 겪는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들을 위해 재능 기부자들이 녹음한 책을 제작ㆍ배포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좋은 기회였다. 지금도 친구들과 함께 더러 연탄 배달 같은 자원 봉사를 하곤 한다.

만든 사람들

기획 및 글 권경성 기자 ficciones@hk.co.kr

김지현 기자 hyun1620@hk.co.kr

사진 김주영 기자 will@hk.co.kr

디자인 백종호 jongho@hk.co.kr

프로그래밍 김태식 ddasik99@hk.co.kr

속기 및 보조 문숙희 인턴기자(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

조윤경 인턴기자(국민대 중국학과 4)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피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