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23) 아들은 쿨가이

이것도 아빠 육아의 장점인지, 17개월 된 아들이 낯을 안 가린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덥석 안기고, 낯선 사람을 잘 따라다닌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뚝뚝한 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육아휴직 이후 아들이 사람을 보고 울음을 터트린 기억은 없다. 대개 이내 웃고 그 앞에서 재롱을 떤다. 재롱이라고 해 봤자 알 수 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거나, 개구리, 토끼를 따라 제자리서 뛰거나 주변에서 뛰노는 수준. 많은 사람들이 “순하다”,“애 보기 편하겠다”는 류의 부러움 표현과 함께 “아빠가 애를 키워서 그런가?”하고 묻는다. (내가 그걸 어찌 알겠는가. 그냥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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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지 알 길이 없는 아들은 흥미를 끄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그리로 달린다. 관심 끄는 또래 아이를 만나자 아빠 손도 뿌리치고 따라가는 아들놈!

솔직히 낯을 안 가리는 아들 덕을 좀 보기도 했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날, 추운 날씨도 날씨지만 아들을 대동해 쓰레기 배출이 곤란한 때 지인 집(생판 처음 가는 집은 아니다)에 아들을 맡겨놓고 일을 본 적도 있고, 화장실이나 근처 다른 일을 볼 때도 동행한 사람에게 아들을 잠시 맡기고 일을 처리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제 어린이집에 보내도 되겠다’, ‘너는 육아휴직을 날로 먹는구나’하는 소리를 동시에 듣고 있다. 아주 틀렸다고는 못해도, 적어도 이 아빠의 입장에 한번 서봤다면 그렇게 막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넘쳐도, 모자라도 문제라는 게 여기 그대로 적용된다.

며칠 전 동네공원 산책에서 아들은 처음 만난 모녀의 손을 잡고 한참을 따라갔다. 대학생 정도의 딸과 산책하는 아주머니였는데 아장아장, 쉭쉭 걷는 아들이 신기했던지 웃으면서 몇 마디 붙이면서 내미는 손을 아들이 잡았다. ‘아줌마 집에 가서 살까?’ 하며 손을 끌자 발길을 돌려 따라갔다. 하도 우스워서 허허대며 가만있으니 아들은 결국 십 미터 가량 가다 되돌아 왔지만, 아차! 싶었다. ‘이러다가 애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구나.’말도 못하고, 엄마 아빠 이름도 전화번호도 모르는 애들이 이렇게 해서 미아가 되는구나 싶었다.

뿐만 아니다. 낮잠 후 늦은 점심(오후 3시 정도)을 먹기 위해 찾은 식당에선 한가해진 아줌마들과 스스럼 없이 놀기도 하고, 쇼핑몰에선 약간 더 큰 형 누나들을 따라 뛰다니며 이 아빠를 긴장시킨다. ‘이 험한 세상에서 말도 못하는 아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면….’ 상상의 나래를 펴면 등엔 땀이 나고 심장은 쾅쾅거린다. 친구들 모임은 물론 결혼식 같은 행사장에, 송년회, 신년회 같은 술자리에(물론 술은 마시지 않는다) 심지어 장례식장에까지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돌렸던 게 이제 와서 후회되기도 한다. (근심이 막심하니 그냥 드는 후회다. 낯가림과 상관 관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낯 가리는 애들이 똑똑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아들은 처음부터 ‘해당사항 없음’이고, 최근엔 낯을 안 가리는 게 아니라, 못 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참에 ‘경찰 보험’도 하나 들었다. 말 못하는 어린 아이 지문을 등록해 놓으면 미아가 됐을 때 부모에게 연락이 오는 장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물론 그 미아가 경찰에 인계 됐을 때의 일이다. ‘안전드림(Dream)’ 홈페이지(www.safe182.go.kr)에서 각종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이튿날 동네 파출소에서 아들 지문을 떠주는 걸로 계약되는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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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파출소에서 아들 지문 등록하는 모습. 아들은 처음 보는 경찰관한테도 쿨하게 손가락을 내줬다. 경찰관 : 울지도 않네? 우와~. (지문스캐닝) 한 번 만에 성공!

물론 엄마아빠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새긴 목걸이나 팔찌도 생각했다. 하지만 모자처럼 옷 아닌 다른 물건들을 몸에 걸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녀석이라 일찌감치 포기했다. 낯을 가리지 않는 이유나 원인이 뭐가 됐든 어린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키우는 게 최우선이다.

걷기 시작해서, 낯선 사람을 봐도 울지 않아서 이 아빠의 육아노동 강도를 미미하나마 줄여주더니, 그것들이 미아, 실종의 가능성을 높일 줄이야…. 자식이 늦게 걷는다고 부모가 걱정할 것도 아니고, 손주가 낯을 가린다고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를 탓할 일도 아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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