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진 칼럼]배려하는 마음

남의 처지는 안중에 없었던 ‘땅콩회항’

사회 3대 惡은 손놈, 갑질, 안전불감증

새해엔 ‘역지사지’를 화두로 삼았으면

말 많던 말띠 해가 가고 양양(揚揚)한 양띠 해가 왔다는 말도 있고, 갑오년(甲午年)이 지나 을미(乙未年)이 왔으니 갑의 시대가 끝나고 을의 세상이 올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씨 사건을 생각한다. 조씨가 그렇게도 죽을 죄를 지었는가. 소위 땅콩회항으로 구속되어야 할 사람은 조씨와 그의 심복(?)이었던 대한항공 여모 상무가 전부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법률적으로 검찰이 조씨와 여씨에 대해 치도곤을 안겼을 때, 법원은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남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여 얘기를 들어보았다. 무심했던 두 가지 관점을 깨우치게 되었다. 땅콩회항 사건에서 진정 구속되어야 할 사람은 그 비행기의 조종사와 기내 사무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얘기들이 적지 않았다. 항공기와 선박의 경우 조종사와 선장이 실질적으로 대통령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다. 따져보면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씨와 여씨만 구속되어버린 현실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번 사건에서 간과하고 있었던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도 2014년까지 우리 사회 최대의 금기(禁忌)가 ‘손놈’과 ‘갑질’과 ‘안전불감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다는 ‘손놈’이란 말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아마도 ‘손님 놈’이란 데서 나온 듯한데, ‘싸가지 없는 못된 고객’이란 의미로 통용되고 있었다. 알바에 목을 매고 있는 청소년 사회에서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대상이 ‘손놈’이라는 얘기다. 그들 사회의 ‘손놈’, 장년 사회의 ‘갑질’, 중년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지난해 우리 모두가 끔찍하게 혐오했던 아이콘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땅콩’이 ‘수박’만큼 커진 이유를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땅콩회항 사건에서 조씨와 그 주변의 행태는 이 세가지 아이콘, ‘2014년의 3대 악(惡)’을 부족함 없이 한꺼번에 꿰어 차고 있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생각한다.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시작됐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뜻인데, 무슨 일이든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하여 행동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반대되는 의미다. 이어 맹자는 “남을 예의로 대해도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공경하는 태도를 돌아보고, 자신은 사랑하는데 그가 가깝게 대해주지 않으면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남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스스로 지혜가 부족함을 돌아보라(禮人不答反基敬 愛人不親反基仁 治人不治反基智)”고 말했다. 한마디로 ‘배려(配慮)하는 마음’이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불감증’이 우리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국가가 국민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두려움이 사무쳤다. 국가의 개조가 필요하다. 어렵고 힘들지만 찬찬히 일궈가야 할 일이다. 이어 ‘손놈’과 ‘갑질’을 생각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힘들지 않게, 당장이라도 이뤄낼 수 있을 일이다. 어렵지 않은 역지사지의 태도, 남의 반응에 분노하기에 앞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마음을 염두에 둔다면 새해에는 ‘손놈’과 ‘갑질’을 화두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 듯하다.

유럽 어느 나라 어느 카페가 있다고 한다. 손님이 “어이, 커피!”라고 말하면 1,000원을 받는다. “커피 주세요”라고 주문하면 900원을 받는다. 여기에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덧붙이면 다시 100원을 깎아 8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그러한 카페가 있는지는 가보지 않아 모르지만 있을 만하고 있어도 될 만한 얘기다. 나아가 ‘손놈’이나 ‘갑질’을 더 많이 피해 간다면 700원, 600원만 내도 될 듯하다. 배려하는 쪽에서는 사소한 마음과 노력을 제공하지만, 배려 받는 쪽에서는 커다란 즐거움과 실질적 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다.

양띠 해가 시작됐다. 한반도 남단 외딴 섬에서 자랐기에 우유(牛乳)는 거의 먹어보지 못하고 가끔 양유(羊乳)를 얻어먹고 자랐다. 양의 젖을 얻으러 갈 적이면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된다. 포유류 가운데 무릎을 꿇고 앉아 어미의 젖을 빨아먹는 새끼들을 양 외에는 보지 못했다. 어미가 새끼를 배려하는 것인지, 새끼가 어미를 배려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주필 bjjung@hk.co.kr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