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의 책상 엿보기를 좋아한다. 어쩌다 생소한 사무실에 들어가면 모르는 타인들의 책상을 어김없이 흘끔거리게 된다. 그건 내가 타인의 삶을 궁금해 하는 인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의 책상들인데 그 위의 풍경은 각각 다르다는 것이 매양 신기하고 경이롭다.

작년 여름 출간된 책, 데스크 프로젝트:100명의 책상이 당신에게 이야기하는 것들(톨 출판사)의 저자 김종민씨 역시 ‘남의 책상들’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의 인터렉티브 디벨로퍼인 그는 회사 동료들의 각기 개성 넘치는 책상을 보면서 문득 이들의 책상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면 어떨까라는 작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데스크 프로젝트(Desk Project)는 전 세계 크리에이터들의 책상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아카이브 프로젝트로, 2011년 웹사이트(desk.cmiscm.com)를 시작으로 하여 모바일 앱, 포스터로 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세계 각지 580명이 넘는 크리에이터가 참여했다. 책은 지난 4년 간 진행된 데스크 프로젝트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책 속에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책상들이 가득하다. 물론 네모난 책상 위에 컴퓨터가 한 대씩 올려져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 엇비슷한 책상일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의 책상이 많은 만큼 컴퓨터도 애플사의 맥 시리즈가 대다수다. 그러나 사진들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 100개의 책상들이 다 다르다는 걸 금세 알 수 있다. 어떤 책상엔 갓이 달린 흰 스탠드가, 어떤 책상엔 은색 철제 스탠드가, 어떤 책상엔 비스킷 그릇이, 어떤 책상엔 먹다 남은 와인병과 잔이, 어떤 책상엔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앉아 있는 것이다. 책상은 다 다르다. 책상 주인이 다 다르듯이. 인간의 얼굴이 다 다르고 내면이 다 다르듯이.

한 사람의 책상은 길고 구구절절한 소개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려준다. 각 분야의 창작자들이 자신의 책상에 관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책상은 일상의 공간인 동시에 창작의 영감을 주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미국 덴버에 사는 프로듀서 샤즈 세디그자데흐는 “책상이 없다면 나는 민들레 꽃씨를 쫓는, 길을 잃어버린 강아지이고 톱 없는 목수이다”라고 말하며, 브라질 상파울루의 디자이너 알렉스 누네스는 “내 마음이 사람이라면 내 책상은 그 사람의 집이다”라고 한다.

남의 책상을 엿보고 나면 필연적으로 질문이 남는다. 나의 책상은 나에게 어떤 곳이냐고. 그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꿈꾸며 사느냐는 질문인 동시에, 범속한 일상생활을 어떤 식으로 영위하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시인의 책상(RHK)이라는 책을 펼치면 한국의 젊은 시인 10명의 책상을 엿볼 수 있다. 김경주, 김승일, 박성준, 박진성, 서효인, 오은, 유희경, 이이체, 최정진, 황인찬. 한국 시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젊은 이름들이다. 이들이 공개하는 책상 사진은 대부분 심심하고 시시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에게 책상은 거기 있지만 거기 없는 존재인 것도 같다.

오은 시인은 책상 없는 소년이었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딸린 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생활했던 시절 밥상이 책상이고 놀이공간이었다. 레스토랑의 테이블도 마찬가지였다. 소년 오은은 2번 테이블에서는 주방에서 훔쳐온 마른안주를 몰래 먹었고 소파가 놓인 7번 테이블에서는 낮잠을 잤으며, 널찍한 3번 테이블에서는 책을 읽곤 했다. 나중에 책상다운 진짜 책상이 생겼지만 그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의 책상은 방 한복판에 놓인 밥상이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테이블들이다.

우연히 한 인터넷 블로그에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책상을 한 번 찍어봤다는 분의 사진을 보았다. 베드테이블 위에 맥북이 놓인 자취방의 침대와, 6년 째 일하고 있다는 사무실의 책상이었다. 나는 낯선 이의 그 평범하고 위대한 공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내 오래된 책상에 가 앉았다. 책상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가 마땅히 그거였다는 듯이.

정이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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