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성탄 특수 누리며 기독교 탄압... 중국 크리스마스의 두 얼굴

알림

성탄 특수 누리며 기독교 탄압... 중국 크리스마스의 두 얼굴

입력
2014.12.23 15:46
0 0

성탄용품 최대 수출기지 이우시...앞은 상점 뒤는 공장 600개 기업

온몸이 빨간색으로 물든 농민공... 강한 화공 염료에 마스크는 필수

아직은 생소한 서양 명절 대도시 중심가 외엔 분위기 못느껴

겉으론 종교 자유 실제론 탄압

동화 속 산타클로스는 눈이 많은 북극 지방의 한 장난감 공장에서 요정들과 함께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나눠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만든다. 그러나 정작 전 세계 어린이들 손에 쥐어지는 성탄절 선물의 대부분은 중국 광둥(廣東)성과 장쑤(江蘇)성의 완구 공장 단지에서 제작되는 것이 현실이다.

선물을 만드는 주체도 요정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온 중국의 농민공들이다. 초췌한 모습의 이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일해야 한 달에 겨우 3,000위안(54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전 세계 크리스마스 용품의 60%, 중국에서 소비되는 성탄절 장식의 90%가 생산되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한 성탄용품공장에서 농민공 근로자가 염료 작업을 하고 있다. 신랑망 다운로드
전 세계 크리스마스 용품의 60%, 중국에서 소비되는 성탄절 장식의 90%가 생산되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한 성탄용품공장에서 농민공 근로자가 염료 작업을 하고 있다. 신랑망 다운로드

● 세계 크리스마스용품 60% 중국이 공급

선물뿐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와 조명 장식, 장식용 별 등 각종 성탄용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 성탄용품의 3분의2, 중국 성탄용품의 90%는 중국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시에서 제작된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성탄용품 수출기지인 이 곳엔 600여개의 성탄용품 기업들이 몰려 있다.

2001년 10여 곳에 불과했던 성탄용품 기업들은 10여년만에 이렇게 늘었다. 어떤 성탄용품이라해도 생산할 수 있는데다 가격 대비 품질도 우수한 게 전 세계의 구매자를 끌어 모은 비결이다. 도매업자들은 공장들을 일일이 찾아 다닐 필요도 없다. 이우국제상업무역타운에는 각 공장과 연계된 300여개의 성탄용품 상점들이 모여 있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앞에는 상점, 뒤에는 공장’(前店後廠)의 경영 방식이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이우시 공장들도 성수기를 맞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곳 공장들은 통상 매년 6~9월이 가장 바쁜 때다. 이 시기에 생산을 마친 뒤 전세계로 보내야 시즌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쥔창(張俊强) 진시터(津喜特)성탄공예품유한공사 총경리는 최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이우시는 여름철이 가장 성수기고 10월이면 이미 파장 분위기”라며 “국내 주문 등을 소화하기 위해 문을 열어 두는 곳도 있지만 정작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엔 대부분 공장이 문을 닫고 쉰다”고 말했다.

올해는 이 곳도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우성탄용품협회측은 올해 성탄용품 총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15%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공장은 수출량이 3분의 1이나 줄었다. 지난 8월 한 달 간 이우시의 성탄용품 수출액은 2억4,000만위안(43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9% 떨어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우시의 성탄 용품 시장에 한파가 불고 있는 것은 우선 인도 및 베트남과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인도와 베트남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중국이 싹쓸이해온 물량을 일부 가져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중남미 지역의 경제가 추락하며 타격이 컸다. 이우시의 성탄용품 수출의 약 50%를 차지하는 곳이 바로 중남미기 때문이다.

● 최대기지 이우의 생산환경 열악

성탄용품을 만드는 곳이라면 낭만적일 것 같지만 사실 이 곳의 작업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크리스마스 장식의 특성 상 좀 더 화려하고 좀 더 눈에 띄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강한 화공 염료들을 써야 한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색은 단연 선홍색이다. 자연스레 근로자는 온 몸이 빨간색으로 물 드는 길을 피할 수가 없다. 안전을 위해서 마스크를 쓴다 해도 1시간여마다 다시 바꿔줘야 한다. 염료 찌꺼기가 마스크에 달라붙어 굳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하루에 10여개의 마스크를 소모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성탄용품들은 통상 배를 통해 전 세계로 운송된다. 그러나 올해는 기차를 통해서도 수출이 돼 눈길을 끌었다. 중국 저장성 이우시와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잇는 ‘이신어우’(義新歐ㆍ이우시-신장위구르자치구-유럽) 철도 노선이 개통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이우시에서 만들어진 성탄절 선물과 장식 등을 41개 컨테이너에 싣고 이우시를 출발한 열차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폴란드, 독일, 프랑스 등을 거쳐 지난 9일 스페인에 도착했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눈썰매가 아니라 중국산 크리스마스 용품과 선물을 가득 실은 기차가 총 1만3,052㎞를 달려 유럽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안겨 준 셈이다. 당시 이신어우 노선 열차의 총 컨테이너 수는 모두 82개였다. 나머지 41개 컨테이너 등엔 전자제품과 의류 등도 중국산 제품이 실렸다.

중국 매체들은 이에 대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ㆍ실크로드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를 함께 일컫는 말) 구상의 중요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일대일로 실크로드 구상을 통해 중국 경제의 영향력을 유라시아 전체로 확산시킬 꿈을 꾸고 있다.

중국의 성탄 사과 '핑안궈'.
중국의 성탄 사과 '핑안궈'.

● 중국, 성탄 분위기 적고 교회는 탄압

중국은 기독교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기대, 성탄용품들을 전 세계에 팔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선 대도시의 중심가를 제외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가 없다. 25일이 공휴일도 아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서양 명절일 뿐이다. 심지어 주로 중국 서부지역에서 일자리를 좇아 이우시까지 온 농민공조차 자신들이 만든 장식들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탄절 선물을 주고 받는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대세라고 보기가 힘들다. 오히려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는 23일 “맹목적으로 외국을 숭상해선 안 된다”며 “크리스마스의 중국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할 정도로 거부감이 크다.

하지만 풍속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연인끼리 사과를 주고 받는 게 이색적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뜻하는 중국어 핑안예(平安夜)와 사과의 중국어인 ‘핑궈’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 착안해 평안한 시간을 보내라는 뜻으로 겉면을 예쁘게 장식한 사과를 건넨다. 이를 핑안궈(平安果)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무신론이 가장 일반적이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게 사회주의 기본 사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과거 서방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에 섰다는 비판적 인식이 강하다. ‘마오쩌둥(毛澤東) 어록’이 성경보다 더 중시된다. 그래서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중국 당국은 기독교 단속을 더 강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중국 허난(河南)성 정부는 지난 16일 난러(南樂)현에 있는 난러 기독교 교회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교회 십자가를 철거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전했다.

올 들어 중국은 지난 4월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는 저장성 원저우(溫州)시 융자(永嘉)현의 싼장(三江)교회도 강제 철거하는 등 기독교에 대한 단속과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당국은 신축 건물과 십자가가 건축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철거 이유로 내 세웠지만 실제로는 기독교 세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원저우는 900여만명의 인구 중 100여만명이 기독교 신자인 곳이다.

중국의 기독교인들은 당국이 지하교회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것이라고 불안해 하면서 성탄절을 맞고 있다. 중국에선 개신교의 경우 관제 단체인 중국기독교삼자(三自)애국운동위원회, 천주교는 천주교애국회를 통해서만 신앙 생활을 하도록 돼 있다. 삼자란 자치(自治) 자양(自養) 자전(自傳)을 뜻한다. 교황청의 주교 서품권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선 이런 관제 단체 아래 있지 않은 지하 교회들이 더 많다. 중국공산당은 기독교 세력이 반공산당 정치 조직으로 성장, 공산당 통치를 위협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이 중국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기독교를 활용할 수도 있다고 의심한다. 중국이 겉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기독교를 탄압하는 이유다. 세계 최대 성탄용품 생산 기지이자 크리스마스 덕분에 성장해 온 이우시가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는 기독교 교회가 밀집한 원저우시와 200여㎞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