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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인조차 의아해하는 아베 유세장 일장기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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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일본인조차 의아해하는 아베 유세장 일장기 물결

입력
2014.12.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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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집권 자민당의 지지자들이 13일 도쿄 아키하바라 선거 유세 현장에서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지지자들이 13일 도쿄 아키하바라 선거 유세 현장에서 일장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일찌감치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된 이번 일본 총선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 있다. 선거 전날인 지난 13일 저녁 도쿄 아키하바라 대로변의 아베 총리 가두유세장은 인산인해였다. 그 인파 속에 손에 일장기 ‘히노마루’를 들고 흔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집권 정당이라고는 하지만 총선의 일개 정당 유세장에 자민당 깃발도 아니고, 총선 필승 같은 문구를 적은 피켓도 아니고 왜 일본 국기가 등장한 걸까. 이들의 정체는 뭘까.

일본 트위터에서 “유세 보러 갔더니 누가 나눠주더라”는 글을 여럿 볼 수 있는 걸로 봐 사람들이 미리 준비해 들고 온 것은 아닌 듯 했다. 일장기 나눠주는 사람이 누군가 궁금해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자민당 사람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아베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하더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일본 총선에서 일장기 물결이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중의원 선거 때도 주로 아베가 등장하는 자민당 가두유세장에 일장기 물결이 일었다. 이런 유세장에 일부러 들렀다면 아베를 극렬히 반대하는 사람은 아닐 것으로 짐작 되는데도, 일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다.

소문으로만 듣고 처음 이런 광경을 봤다는 중년 남성 우메자와는 트위터에 “이상한 분위기다. 자민당을 지지하지 않으면 일본 국민이 아니라고 하는 분위기조차 느껴진다”고 감상을 적었다. “아베는 파시즘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또다시 파시스트 집회가 된 아키하바라”라며 아베 주도로 일본 사회가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는 비판 발언도 적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지난 총선 가두유세에 모인 청중들이 일장기를 흔든 뒤 그대로 민족차별 시위대가 됐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 사진에다 ‘전전(戰前)시대가 온다’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달아 포스터 형태로 만든 이미지도 인터넷에서 떠돈다.

아시아태평양전쟁 출정 병사가 탄 기차를 향해 사람들이 일장기를 흔들며 환송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아시아태평양전쟁 출정 병사가 탄 기차를 향해 사람들이 일장기를 흔들며 환송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런 일본 시민들의 걱정은 기우일까. 아키하바라 유세장에 대형 욱일승천기까지 등장한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의 그간 발언을 되짚어 보면 더더욱 그렇지 않다. “이른바 A급 전범이라는 분들은 도쿄재판에서 전범 판결을 받았지만 국내법으로는 전범이 아니다”(2006년 중의원 예산위) “헌법 9조의 ‘전쟁 포기’는 미국이 자국과 연합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본이 다시 미국과 유럽 질서에 도전할 수 없도록 강한 의지를 갖고 만든 것이다”(2006년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 실제로 그는 지난 1년간 집단적 자위권 용인을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 시키기 시작했다.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해 시민의 알 권리를 통제하려 들고 있다.

아키하바라 유세가 묘하게 불쾌한 것은 그 풍경이 2차 대전 시기 국방부인회 등이 주축이 돼 전쟁터로 내몰리는 일본 병사를 열렬히 환송하던 광경과 꼭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베의 일본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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