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밀!당!]

독일 바스프 소방관들이 특수소방차량을 이용해 비상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바스프 제공

세계 1위(지난해 매출액 기준) 화학회사 바스프의 독일 루트비히스하펜 본사는 여의도 약 3.5배의 면적(10㎢)으로 단일 공장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학 공장입니다. 그런 바스프 본사에는 대형 소방서(Fire department)가 있습니다. 100년 역사를 지닌 이 소방서에는 120명의 숙련된 소방관이 4교대로 근무하는 자체 소방 조직을 꾸리고 있고, 대 당 120만 유로(약 16억원)에 달하는 고가 특수 소방차 2대를 포함해 수 십대의 소방차, 구급 차량이 있습니다. 바스프 소방 부문 책임자 거트 반 보르켈 씨는 4일(현지시간)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에게 특수소방차량에 대해 “제트 엔진이 장착돼 소방 진압 반경이 일반 소방차의 10배인 200m에 이른다”며 “전 세계에 딱 6대 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같은 특수차량을 포함해 바스프가 지난해 전 세계 사업장의 각종 사고와 환경 감시에 쓰는 예산이 3억2,500만유로(약 4,500억원)를 쓰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노력 덕분에 이 공장에서 일어난 대형사고는 1948년 여름 화학물질을 실은 기차가 정차 도중 과열로 폭발해 약 200명 목숨을 잃었던 것이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보르켈씨는 “공장 안에서 화학 물질로 인한 사고는 거의 없고, 루트비히스하펜 공단 내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지는 등의 작은 사고가 대부분”이라며 “요즘엔 자전거나 오토바이 등을 탈 때 헬멧을 반드시 쓰고 다녀야 한다는 안전 지침을 직원들에게 전달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독일 바스프 소방관들이 특수소방차량을 이용해 비상 상황을 대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바스프 제공

바스프가 큰 돈을 들여가며 소방서를 운영하는 것은 위험 물질을 다루는 화학회사는 단 한 번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기업들도 자체 비상 조직과 설비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그 조직은 유명무실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는 모습과는 대비됐습니다.

바스프 본사는 전체 직원을 상대로 많게는 하루에 두 차례 공장이나 사무실 소개 훈련이 이뤄지고, 1년에 2차례씩 대형 사고를 가정한 훈련을 하는 등 구성원들이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고 있는데요. 안전에 대한 바스프의 ‘집착’은 독일 본사뿐이 아니라 전 세계 사업장 모두에 해당됩니다. 본사에서 수시로 각 지역 사업장에 안전 관련 암행감찰을 하고, 본사의 참관 아래 비상 훈련을 수시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독일 바스프가 자체 운영 중인 소방서의 소방 차량들. 한국일보 자료사진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바스프 소방서 위치가 공장 바깥 쪽 도로와 맞닿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은 몇몇 국내 대형 정유화학 회사들도 자체 소방서를 두고는 있습니다만 대부분 외부와 차단된 공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이는 지역사회의 안전까지 고려한 선택이라는 게 바스프 측의 설명입니다. 4만명 가까운 직원과 그 가족의 삶의 터전인 만하임, 하이델베르크 등 도시와 바로 접해있기 때문인데요.

심지어 바스프 소방센터는 20년 전부터는 바스프 공장뿐 아니라 루트비히스하펜과 인근 지역 사회에도 안전 컨설팅을 제공하고, 지역 사회에 재난이 일어나면 직접 지원 작업에도 나서고 있습니다. 올해 가을 루트비히스하펜 시내에서 일어난 가스 폭발 사고 수습도 바스프 소방센터가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다친 사고 당시 바스프 소방센터는 지역 소방서보다 먼저 연락을 받고 출동해 사고를 수습했다고 합니다. 보르켈씨는 “공장 밖 인근 도시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도 바스프의 소방차와 소방관들이 출동한다”며 “우리의 노하우와 시스템이 지역과 주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지역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바스프의 깊은 고민은 안전관리시스템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환경감시센터에서 대기, 물, 소음, 악취 등 환경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24시간 점검하고, 가스 누출이나 유해 물질 방출 등 이상 조짐이 감지되면 비상관리센터가 즉시 가동되는 방식입니다. 만약 바스프 공장 안에서 위험 상황이 생기면 비상관리센터는 직원과 주민에게 경고 방송 등으로 위험을 적극 알리는 한편 바스프 소방센터와 루트비히스하펜 당국 등 비상상황 대응 기구에 사고 발생을 통보한 뒤 사고 대응을 지휘하는 등 6단계에 걸쳐 20분 안에 모든 초기 대응이 끝날 수 있도록 하는 매뉴얼을 통해 체계적으로 비상사태에 대처하고 있습니다.

독일 바스프가 보유 운영 중인 수질 점검용 특수 차량. 한국일보 자료사진

특히 특수 차량들이 공장 안팎을 오가며 수시로 소음과 냄새를 점검한다고 합니다. 이는 공장 안에 있는 직원들이야 소음과 냄새에 익숙하지만 그렇지 못한 공장 밖 주민들이 느낄 불편함까지 고려한 조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주민 누구나 이상이 있거나 불편함이 있으면 바스프가 24시간 운영하는 소방서(112), 환경감시센터(4040)의 콜 센터로 신고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보르켈씨는 “화학제품은 인류 생활에 편리함을 주지만 물질에 따라 잘못 쓰거나 관리되면 인체나 환경에 잠재적으로 유해할 수 있다”며 “바스프는 인근 주민들이 안전한 삶을 누리는 데 책임이 있기에 정확한 사고 대응과 사고 관리를 위해 상시로 환경을 감시하는 한편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비상관리지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지난해는 이웃 나라 벨기에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났을 때에도 벨기에 당국의 요청을 받고 앤트워프에 있는 바스프 벨기에 공장의 소방센터가 사고 수습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현재 바스프를 포함해 유럽연합(EU)내 주요 화학기업들은 지역 사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 수습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하는데요. 보르켈 씨는 “지역 사회에서 일어난 재난 수습에 힘을 보태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정부에 우리가 화학물질과 관련한 사고에 잘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뢰를 심어주는 효과가 있다”며 “비록 경제적 보상은 없지만 무형의 효과를 내는 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정부 규제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은 자체 기준을 마련해 지키고 있다”며 “우리 제품에 대해서는 우리가 더 잘 알기 때문에 안전과 관련해서는 정부보다 우리가 더 낫다고 자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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