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재미없네. 돈은 니들이 다 처먹고, 난 월급만 받으면 땡이냐.”

tvN드라마 ‘미생’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요르단 계약 건을 따내고도 다음 날 다시 월급쟁이로 돌아간 제 모습을 한탄하는 ‘박 과장’의 대사인데요. 내년 예산안이 법정 처리시한을 불과 1시간 49분 남기고 2일 밤 가까스로 가결되면서 누구보다 기뻐했을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치는 대목인 것 같습니다. 박 과장의 대사에서 ‘돈’을 ‘예산’으로 바꾸면요.

예산실 직원 100여명은 지난달 초부터 서울 여의도로 짐을 싸 들고 올라가 국회에 상주하며 예산안 심의가 통과되기만을 밤낮으로 기다렸습니다. 이제 한 달 만에 다시 세종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확정된 예산안을 토대로 부처별 예산 배정계획을 만드는 업무로 다시 바빠질 전망입니다.

그간 낮에는 국회에서 여야의 지리한 예산 심의 과정을 지켜보며 ‘무한 대기’하고 밤에는 여의도 소재 2인1실 호텔에서 지내는 생활을 한 달 가까이 견뎌냈던 예산실 직원들로서는 12년 만에 예산안이 법정 처리시한 내 통과된 것이 누구보다 기쁠 터.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흡족해하며 직원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결과가 좋습니다. 최종 예산안은 정부안보다 6,000억원이 삭감됐다고는 하지만 376조원에 달하는 내년 예산 규모에 비하면 삭감 규모는 0.2%에 불과합니다.

예산 확정에 필수적인 부수 법안들도 거의 다 통과됐습니다. 특히 담뱃값 2,000원 인상이 거의 원안대로 통과된 것은 기재부 관계자들조차 “놀랐다”고 평가한 대목. 올해 9월 기재부와 보건복지부 등이 담뱃값 인상안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정부 내에서 2,000원이 그대로 오르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인상분이 어느 정도 삭감될 것을 대비해 정부가 인상분을 500~1,000원 정도 올려 불렀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열심히 뛰는 자 위에는 그러나 언제나 나는 자가 있나 봅니다. 진정한 승자는 일부 여야 의원들이라는 평가가 눈에 띕니다.

전체 예산은 6,000억원 줄었지만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민원성 예산과 밀접하게 연관된 사회간접자본(SOC)예산은 정부안(24조4,000억원)보다 4,000억원이나 늘었습니다. 특히 여야 원내대표 지역구 예산이 정부 배정액보다 수억~수십억원 늘었고, 최경환 부총리의 지역구인 경산ㆍ청도에는 세계코미디 예술제 예산으로 4억원이 증액 편성됐습니다.

‘미생’에는 “직장인에게 월급과 승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대사도 나오는데요, 고생한 예산실 직원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기를 희망해 봅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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