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14. 아빠의 게으름, 체력저하 혹은 착각

휴직하면 자유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다. 책도, 영화도 신나게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출입처 구분을 떠나 다양한 ‘나와바리’의 기사들도 더 챙겨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조금 더 노력하면 기자생활 이후의 삶도 보장해줄, 평생 유효한 자격증이나 기술도 하나 정도는 더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 잠자는 시간이 곧 아빠의 휴식시간이요, 자유시간이 되는 상황에서 아들은 오전, 오후 1시간씩(운(?) 좋으면 2시간) 자고 밤 9시면 깊은 잠에 들어 이튿날 아침 6, 7시까지는 쭉 잤으므로.

하지만 육아휴직 다섯 달이 다 돼 가도록 그 중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다. 물론, 내가 게을러지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도 어렵지만, 어마어마할 것 같은 자유시간은 결국 신기루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씩 낮잠에 들며 하루 절반을 잠으로 보내던 아들의 잠이 확 줄어든 게 직접적인 계기라면 계기다.

휴직하면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다. 현실이 그렇지 않자 아빠는 아들을 자꾸 재우려고 했다. 어린 아들에게 전부일 수 있는 아빠가 아들을 자꾸 떼어 놓으려고 했다. 아빠가 놓으면 아들은 떨어진다.

한 달 정도 됐을까, 아들이 오전 잠을 점심시간에 자기 시작했다. 6시쯤 일어나 10시 정도에는 잠이 들었는데, 오전 활동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다. 자연스럽게 늦은 점심은 오후 잠도 뒤로 밀어냈는데, 최근엔 그 오후 잠이 밤잠과 합체됐다. 낮잠 하나가 날아가 버린 것이다. 두 번의 아빠 휴식시간이 한번이 됐다는 이야기다.

별 생각 없이 ‘아들도 드디어 어린이집 수면모드에 가까워지고 있구나!’(어린이집에선 점심 후 단체로 잠을 잔다고 한다), ‘한나절을 안자고 버텨? 지구력 한번 죽이는데?!’… 대략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아빠아줌마 입장이고 보니 이거 보통 이상의 문제다. 훈련 50분에 10분간의 휴식을 취하다 ‘훈련 100분, 휴식 10분’선고를 받은 훈련병들의 심정이 이럴까.

여하튼 온갖 것들을 끄집어 내리고 뒤집고 헝클고, 찢고, 부서지도록 타고 노는 아들 옆에서 고개 꾸벅거리며 조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바닥에 누우면, 그래서 아빠가 자신의 놀이에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사정없이 올라타 숨통을 죄거나 두들긴다. 아들의 낮잠을 잘 때에도 사실 온전하게 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들을 본다’는 그 일에서 잠시 해방돼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됐는데 그조차 안 되니 심신이 괴롭다. 거의 하루 15시간을 아들놈과 씨름하는 날들이 반복되면서 아빠도 아들 잘 때 옆에서 잠드는(이게 말이나 되나, 저녁 9시) 날이 잦다. 영화? 책? 논문? 자격증? 지금 생각하면 모두 꿈같은 이야기다.

유모차에 앉아 구경하다 스르르 잠들던 아들은 이제 없다. 쉬지 않고 떠들고 쏘다니는 아들이 있을 뿐이다. 1년 전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하는 통에 잠도 잘 자고 스스로 걷는 아들 만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는데, 막상 그 입장이 되고 보니 그렇지도 않다.

얼마 전 영유아용 DVD를 구입한 것도 길어진 아들의 활동시간과 무관하지 않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이래저래 좋다는 육아선배의 조언이 있었지만 ‘비디오가 돌아가는 이삼십분 동안엔 딴 일을 할 수 있다’는 팁에 확 끌렸다. 아는 동물들이 나오자 뭐라 뭐라고 시끄럽게 떠드는가 하면, (아마도) 무서운 게 나오면 눈살에 힘을 준 채 화면에다 대고 이야기하고, 동물 소리를 따라 내기도, 혼자서 웃기도 했다. 실제 이 시간에 설거지를 했고, 시청에 방해되지 않는 간단한 청소도 했다. 투자의 효과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같이 보는 척 하면서 잠깐씩 자는 잠은 꿀맛이었고, 이렇게 자는 건 또 죄책감이 덜 들었다. 하지만 영상물에 계속 노출시키는 데 한계가 있어 DVD 효과는 길지 않았다.

휴직 다섯 달은 휘리릭 지나갔는데, 하루는 너무 길다. 계속 놀아주기가 힘들 땐 유모차나 차에 태워서 정처 없이 돌며 재우기도 했지만 아들은 요즘 그런 꼼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잠잘 시간이 아닐 때에는 아무리 잠을 유도해도 잠들지 않는다. 시간 낭비요, 기름 낭비다. 방에 커튼을 달고, 잠 부른다는 음악을 틀어도 허사다. 오죽했으면 먹으면 잠 오는 음식 검색까지 했을까. 먹으면 잠 온다는 상추에 아들이 좋아하는 달걀을 묻혀 ‘상추계란전’도 계획했지만, 차마 실천에는 옮기지 못했다.

잠시, ‘육아’ 휴직자라는 신분을 잊고 있었다.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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