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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쌍용차 2,000일

입력
2014.11.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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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화제인 직장인 드라마 ‘미생’의 원작 만화에는 오 과장이 인턴 관문을 통과한 장그래 등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찾는 장면이 나온다. 2012년 만난 윤태호 작가는 작품 흐름과는 다소 동떨어진 듯한 이 장면을 넣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문제이나 뉴스에선 잘 다루지 않는 이들의 아픔에 작은 관심이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아쉽게도, 드라마에서는 빠졌다. 그 짧은 에피소드에 함축된 의미를 드라마 화법으로 설득력 있게 그리기는 버거웠으리라.

▦ “해고는 살인이다.” 해고가 노동자의 밥줄만이 아니라 그에 기반한 삶을 뿌리째 흔드는 현실을 빗댄 이 말이 쌍용차 사태에서는 직설(直說)이 됐다.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에 맞선 파업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끝난 뒤 그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해고자와 가족 25명이 세상을 버렸다. “어떻게든 버텨라. …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完生)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이 시대 모든 미생(未生)들을 향한 오 과장의 따듯한 격려도, 죽을 힘을 다해 버텼으나 끝내 사석(死石)이 되고 만 이들에게는 비수(匕首)가 될 수 있다.

▦ 쌍용차 사태가 11일로 2,000일을 맞는다. 불과 200여일 전의 세월호 참사마저 “이제 그만 좀 잊자”고 유세하는 이 나라에서, 그 긴 세월 지독한 냉대를 견뎌 온 해고자와 가족들의 가슴은 얼마나 너덜너덜해졌을까. 지난 대선 직전 “대선 후 첫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던 약속을 깨끗이 잊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당시 선거대책본부장)는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에게 그랬듯이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야당은 철저히 무능했고, 여론의 관심도 연민을 넘어서지 못했다.

▦ 쌍용차 해고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소송의 최종심 선고가 13일 내려진다. 올 2월 사측의 회계부정 등을 인정해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들 손을 들어준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재판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마지막 인내의 시간이 될 것”이라며 “그 시간이 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 앞에서 연일 2,000배를 하고 있는 해고자들의 절절한 바람처럼, 부디 법의 이름으로 그 길고 험했던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끝날 수 있기를 바란다.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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