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빚더미 시달린 인천 가족 3명 자살, 엄마 "12세 딸 나 따른다 했다" 유서

어린이들 자기 주도적 결정 어려워 부모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셈

지난달 30일 인천 남구 주안동 한 빌라에서 중학교 1학년 이모(12)양이 부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3일 뒤늦게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양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이들을 발견한 아버지(51)가 뒤따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50㎡ 면적의 작은 빌라에선 타다 남은 연탄과 이양 모녀가 쓴 유서 5장이 나왔다. 그 중 이양이 적은 1장짜리 유서에는 “엄마하고 먼저 가요. (아버지) 서운해하지 마세요. 밥 잘 챙기고 건강하세요”라고 적혀있었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에 슬프지 않다”는 말도 있었다.

어린 중학생의 눈물 어린 유서 내용이 알려지자 이날 인터넷에서는 생활고로 인한 일가족 자살을 안타까워하는 의견이 빗발쳤다. 하지만 과연 이 어린 딸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빈곤이 부른 비극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죽음을 강요당한 어린 자녀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양 가족은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는 등 생활고를 겪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긴급지원을 신청한 적도 없었다. 이양은 급식비가 밀리지 않는 등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웃들에 따르면 이양의 아버지가 부동산 경매에 집착하다 큰 빚을 진 것으로 보인다. 빚을 갚지 못하면 연말에 집이 넘어가는 상황까지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양의 어머니는 자살을 결심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어린 딸은 만류하지도 거부하지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양 어머니는 유서에 “딸에게 (힘든) 상황을 설명했더니 엄마를 따라간다고 했다. 나를 원망하지 마라”고 썼다. 큰 빚을 지게 한 남편을 원망하는 내용도 적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어린 청소년의 자살 선택은 성인처럼 스스로 책임지는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과 교수는 “뇌 성장이 끝나는 18~20세가 돼야 상황을 판단하고 앞날을 예측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완성된다”며 “그 이전에는 (이양처럼 자살을) 스스로 결정한다 해도 자기 주도적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많은 가족 동반 자살은 어리거나 장애가 있어 인지능력이 부족한 자녀가 부모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3월 3일 경기 광주시에선 이모(44) 씨가 딸(13·지체장애2급), 아들(4)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딸의 장애로 인한 가정 불화가 원인으로 추정됐다. 전날에는 경기 동두천시에서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윤모(37·여) 씨가 아들(4)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경우 아이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이 낳았다고 해서 자녀를 부모 소유로 보고 목숨까지 앗아갈 권리가 있는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점도 있다. 부모 없이 자녀가 혼자 남았을 때 다른 가족이나 복지제도가 남겨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허술한 사회 안전망도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비극을 부추긴다. 생활고, 가정 불화, 우울증 등 자살을 부추기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 교수는 “사회 안전망이 완벽하지 않은 현실에서 (동반 자살이라는) 부모의 선택이 독단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며 “부모가 세상과 미래를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른들이 시달리는 이런 문제로 인해 아무 책임이 없고 판단력도 부족한 어린 자녀까지 죽음에 내몰려서는 안 된다. 어린 자녀의 죽음은 동반 자살일 수 없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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