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친구와 함께 “우리 다 1등이야”

항암치료 급우 심정 헤아려 모두 삭발

어른들은 꿈도 못 꾸는 아이들의 배려

지난 22일 용인시 제일초등학교에서 열린 가을운동회 달리기 경주에서 6학년 2반 심윤섭, 양세찬, 오승찬, 이재홍 군이 연골무형성증을 앓는 친구 김기국 군을 손을 잡고 달리는 사진.

인터넷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이 화제다. 초등학교 가을운동회. 네 명의 어린이가 한 친구의 손을 잡고 뛰는 장면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 운동회’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한 라디오를 통해 사연이 알려졌다. 지난달 수도권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아이는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 지체장애6급. 달리기 종목에 나왔으나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결승점을 30㎙쯤 앞두고 4명의 친구들이 멈춰 섰다. 아이들은 친구가 따라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손을 잡고 달려 나란히 결승점을 통과했다. 5명의 어린이 손등에는 모두 ‘1등’이라는 고무도장이 찍혔다. 울먹이는 친구를 향해 4명의 아이들은 “우리 다 1등이야”하고 소리쳤다.

아이의 큰누나가 글을 올렸다. “제 동생은 남들보다 높은 하늘을 가졌습니다. 키가 작은 아이입니다. 놀이공원에서 키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자동차게임을 거절당했을 때 동생은 대성통곡 했습니다. 놀이공원이야 안 가면 되지만, 학교운동회는 빠질 수가 없습니다. 5학년 운동회 땐 꼴찌로 가는 동생과 함께 달려주었던 담임선생님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올해는 친구들이 또 우리를 엉엉 울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 전의 이야기다. 역시 한 초등학교 가을운동회. 5학년 학생들의 포크댄스 놀이를 앞두고 담임선생님은 “아차”했다. 할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살고 있는 제자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급히 문방구에서 운동복을 사왔고, 제자를 찾아 어서 입으라며 건네주었다. 아이가 난처해 하며 멀리서 순서를 기다리는 급우들을 가리켰다. 다른 반 아이들은 모두 운동복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자기 반 아이들만 한결같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운동복이 없는 친구를 위해 모두가 운동복을 입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워서, 그리고 기뻐서 담임선생님은 한동안 울먹였다고 한다.

운동회 이야기는 아니지만 비슷한 기억이 또 있다. 워싱턴D.C.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때였으니 거의 20년 전이다. 시골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급우 한 명이 소아암으로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아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결석했던 아이가 처음 등교하던 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단짝 친구가 머리를 삭발하고 함께 나타났다. 그 다음날이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같은 반 친구 모두가 삭발을 하고 등교했다. 까까머리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수업을 받는 모습이 지역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다. 모든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배려하는 마음은 참으로 아름답다. 콧등을 시큰하게 하고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아이들이 어떻게 이다지도 어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운동회’에서 4명의 아이들은 혹시 경기규칙을 어겨 담임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까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배려까지 했다고 한다. 어려운 제자에게 운동복을 사주었던 선생님의 배려도, 친구를 위해 자신들의 운동복을 벗어 던진 아이들의 배려에 비하면 작았다. 단짝 친구가 받을 이상한 시선을 나눠 갖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삭발한 친구의 배려, 다시 두 친구가 당할 멋쩍음을 생각해 모두 함께 삭발하고 등교한 급우들의 배려 같은 것은 어른들은 감히 꿈도 꾸기 어렵다.

어른들 세상은 어떨까. 아름다운 운동회 이야기를 들으며 운동회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 같은 가을철이면 외과병원들이 대목을 맞는다고 한다. 자녀들 운동회에 참가했던 아빠 엄마들이 발목을 삐고, 정강이를 다치고, 근육이 뭉쳐 병원을 찾는 경우가 갑자기 늘어난다고 한다. 함께 달리기 같은 학부모들이 동참하는 게임에서 혼자 1등을 차지하기 위해, 혹은 자식에게 1등을 보여주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몸을 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늦둥이가 많은 세태를 감안하면, 가을철에 외과병원이 특수를 누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듯싶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뒤인 18일부터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지난 4일 폐막한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쓰고 남은 돈을 직원들 보너스로 사용하겠다고 한다. 물론 아시안게임과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조직 예산 운용 등이 별개다. 하지만 같은 아시안게임인데, 그 남은 돈을 형편이 넉넉할 리가 없는 장애인아시안게임 쪽으로 배려하면 어떨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해 보았다. 어쨌든 올 가을 아이들의 배려하는 마음을 엿보고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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