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연합뉴스

“분리공시를 놓고 업계의 의견이 대립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는 제대로 몰랐다. 각계 의견을 청취하느라 관련부처와 협의가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일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가운데 주요 골자였던 분리공시가 무산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판단 착오는 있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마치 분리공시 무산을 정상 업무 처리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차질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제조사 장려금과 이동통신업체 지원금을 의무적으로 구분 표시하게 하는 분리공시는 업계에서 단통법의 핵심 조항으로 다뤄왔다. 소비자 입장에서 분리공시가 이뤄져야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 지원금을 따져보고 약정 등을 감안해 자신의 처지에 맞는 단말기 구매가 가능해 진다. 또 시장이 과열될 때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에서 뿌린 불법 보조금이 각각 얼마인지 드러나 책임 소재를 밝힐 수 있다.

하지만 분리공시는 단통법 시행을 코 앞에 둔 지난달 법제처의 유권 해석을 명분으로 한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제외됐다. 분리공시가 포함된 단통법 고시안이 시행될 경우, 상위법인 단통법과 충돌해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이유였다. 단통법 12조에서 이통사 제출 자료 중 제조사의 장려금을 비공개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휴대폰제조사의 부담이 경제활성화의 차질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부정적인 기류도 분리공시의 발목을 잡았다.

민감한 정책에 대해서 얼마든지 비판적인 견해는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의견 청취와 함께 시행착오를 줄여나가는 게 순리이기도 하다.

문제는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무책임한 처신이다. 분리공시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1년 반 넘게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사안이다. 그렇다면 사전에 규제개혁위원회나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이해 관련 부처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했어야 옳다. 최 위원장의 발언대로라면 주무부처가 핵심 쟁점에 대해 잘못 판단해 법을 기형으로 만든 셈이다. 2년 가까이 국내 통신업계의 핫이슈였던 분리공시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다는 최 위원장의 궁색한 변명도 납득하기 힘들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태도는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결국 단통법의 핵심이었던 분리공시는 무산됐다. 한 이통사 임원은 “분리공시의 중요성을 몰랐다는 최 위원장의 발언은 코미디에 가깝다”며 “분리공시와 관련된 반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분리공시가 빠진 단통법은 시행이 1주일 지났지만,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꺼내 들 다음 카드가 벌써부터 우려된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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