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권 고위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이 화제에 올랐다. 이번 정부가 의욕적으로 연금 개혁에 착수한 것을 높게 평가하면서 제대로 해내면 큰 업적으로 남을 것이란 덕담도 건넸다. 그러자 돌아온 얘기는 “그러나 정권은 잃겠지요”라는 씁쓸한 답이었다.

사실 공무원 연금 개혁에 대한 여론은 표면적으로 호의적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나라살림을 담당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연금개혁의 성과를 피부로 느낄 이는 많지 않다. 눈 앞의 이득으로 직접 돌아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공무원 연금개혁으로 영향을 받는 이들은 기존 수급자와 현 공무원, 거기에 가족까지 합치면 400만명쯤 된다. 이들에겐 피부로 절감되는 직접적인 손해다. 공무원 친구들을 만나보면 다들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한 경찰 친구는 “딴 데는 노조라도 있지만, 우리는 노조도 없어서 말도 제대로 못한다”라고 말하면서도 뭔가 작심한 표정을 지었다.

여권이 두려워하는 것은 당장의 공무원 노조 반발이나 거리 시위 따위가 아닐 것이다. 드러내놓고 반발이라도 하면 대화나 반박을 통해 설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서운 것은 400만이 소리 없이 내는 원성이다. 이는 결국 표심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 계획대로라면 연금개혁안이 2016년부터 적용되는데, 실제 자기 계좌에서 수령액이 줄거나 부담액이 늘어난 것을 보면 절감의 강도가 더욱 커질 게 뻔하다. 마침 2016년부터 선거 국면이 열린다.

일부 야권 지식인들은 우리 유권자가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계급 배반적인 투표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되레 철저하게 이해 타산적인 투표를 해왔다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그런 유권자의 속성을 냉정하게 포착한 쪽이 대개 여권이었고, 그 때문에 선거판의 의제 선점에서도 야권 보다 한 수위였다. 연금 개혁이 성공하면 정권 재창출에는 실패할 것이란 얘기가 과장된 엄살이 아닌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새누리당은 애초 당 차원에서 연금개혁안을 주도할 것처럼 하다가 최근 정부가 안을 만들어 오라며 공을 넘겨버렸다. 연초 경제혁신3개년 계획 발표에서 공무원 연금개혁 의지를 천명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후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이를 특별하게 언급한 일은 거의 없었다. 야당은 아예 입을 닫고 있다. 자칫하면 연금개혁을 밀어 붙이는 주체가 모호해지면서 서로 등 떠밀기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금개혁은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필히 감내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다. 공적 연금은 복지국가를 떠받치는 핵심 제도 중 하나지만, 출발 당시의 설계 보다 사람들의 수명이 크게 늘면서 정부 예산의 정상 궤도를 이탈하는 ‘폭주 기관차’로 변질된 상태다. 이 기관차에 누군가 제동을 걸지 못한다면 우리가 막 시동을 건 복지국가가 정착도 하기 전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도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예산 부담으로 작용한 연금 개혁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이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정치인이지만, 표와 직결되다 보니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생리다. 현대 유럽사에 정통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그래서 “복지 국가가 직면한 위기는 경제적 모순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소심증이 낳은 결과다”고 말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제 몫을 쳐내야 하는 관료들에게 애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다음 선거를 의식할 수 밖에 없는 여당도, 야당도 손을 대기 쉽지 않다. 결국 박 대통령 밖에 없다.

훗날 돌아봤을 때 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으로 무엇이 남을까.‘원칙과 신뢰’라는 브랜드 외에 실제 성과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남북관계는 아직 요원하고 ‘창조경제’는 이미 잊혀진 용어가 됐다.‘비정상의 정상화’ 도 소소한 성과 외에 국가적 차원으로 생각나는 게 없다. 자칫하면‘세월호 정부’라는 오명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지지 기반의 이탈을 무릅쓰고 연금 개혁에 성공한다면, 이 하나만으로도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연금개혁의 전면에 나서야 하는 곳은 당이나 정부가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여야 한다.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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