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구의 집談]

지난 달 서울시의회의 한 의원이 ‘아파트 관리업체들이 허위나 부풀리기식으로 영업배상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금천구 A아파트 단지의 경우 관리업체 본사시설물에 대한 손해배상보험을 단지시설물로 바꿔 기재한 채 제출해 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강동구 B아파트는 위탁관리회사가 자신들이 관리하는 단지 가운데 일부에만 적용되는 보험증권을 제출하는 이른바 ‘돌려막기’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시의원측은 “보험료를 아끼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했습니다.

황당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업체들이 문제 발생시 배상책임을 하겠다는 보험을 대부분 가짜로 가입하고 있다는 얘기이니까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확인을 해보니 관리업체들은 의외로 순순히 인정을 했습니다. 허위로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어느 순간 굳어진 업계의 관행이라는 것입니다. 관리업체의 한 직원은 “보험회사에 가서 몇 만원을 주면 가짜 서류를 만들어준다”며 “입사 초기에 그런 지시를 받았을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모든 회사들이 그렇게 하다 보니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더 황당했던 것은 이들이 밝히는 허위서류를 작성하는 이유였습니다. 입찰 자격을 얻기 위해 불가피하게 범법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주택관리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공고를 할 때 ‘참가자격’으로 보험가입을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리업체로 선정이 되면 보험 가입을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아예 입찰 시부터 보험증권을 제출하라고 요구한다는 얘기입니다.

보통 입찰 경쟁률은 10대1이 넘습니다. 최소 열 개 이상의 관리업체들이 뛰어든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업체 입장에선 낙찰될 확률이 10% 미만입니다. 떨어지면 한낱 휴지조각으로 전락할 보험에 굳이 정식으로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1년에 수백개 단지의 입찰 공고에 참여하는데, 모두 보험에 가입한다는 것은 비용측면에서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의문이 들어 실제로 입찰공고를 찾아봤습니다. 최근에 나온 3곳의 주택관리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보니 모두 제출서류에 ‘영업배상책임보험 증권 1부’ 혹은 참가자격에 ‘영업배상책임보험 2억이상 가입업체’라고 명시돼 있었습니다.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무슨 이유인지 궁금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전국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 측에서는 “관리업체들이 500여개가 난립하고 있고 워낙 이상한 회사들이 많다. 최소한의 자격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부도가 나거나 영세한 관리업체들이 많다 보니 이 같은 조항을 둔 것이란 얘기입니다.

문제는 이런 자격을 두는 것이 합법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국토교통부의 주택관리업체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따르면 완전경쟁입찰이 아닌 참가자격에 제한을 두는 ‘제한경쟁입찰’의 경우 ▦사업실적 ▦기술능력 ▦자본금 등 3가지에 대해서만 자격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조항을 두는 것은 국토부의 지침에 어긋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일이 관행처럼 자리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아파트 관리의 문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감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실제로 국토부나 서울시에는 관리업체를 전담하는 부서나 공동주택에 대한 관리대장이 없습니다. 좋게 얘기하면 주민 자치의 영역이기 때문인데, 이 같은 자치를 악용한 비리가 빈발해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허위 보험계약의 문제도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벌어진 황당한 관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일차적인 원인은 여전히 관리업체에 있습니다. 아무리 ‘을’의 위치라 해도 주택관리협회 차원에서 문제 제기를 해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낙찰 후에도 여전히 허위 보험을 유지했다는 점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입주자대표회의 측에 있겠지요. ‘낙찰 후 보험가입 서류 제출’식의 내용으로 자격 요건을 수정한다면, 불합리한 관행으로 인해 범법행위가 양산되는 일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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