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6. 아내의 복직

아내가 복직했다. 인수인계를 빙자한 아내와의 공동육아가 끝났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내 생활은 ‘179도’ 정도 달라졌다. 아내와 함께 아들을 돌보다가 혼자 보게 됐다면 산술적으로 두 배 정도 힘들어지는 게 맞을 텐데, 이전보다 부하가 열 배 정도는 더 걸린다.

사실 나는 육아에 준비된 몸이다. 아내는 복직 전 동기들과의 저녁 약속, 친구들과의 극장 외출 등을 핑계로 자리를 종종 비웠다. ‘9월부턴 당신 혼자 애를 혼자 봐얄 테니 미리 훈련한다고 생각해!’ 아들이 엄마를 찾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어야 했으므로 놀아주기, 밥 먹이기, 잠재우기 등으로 구성된 훈련은 실전처럼 이뤄졌고 매번 성공적이었다. 단독육아에 대한 자신감도 것도 이런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실상은 달랐다. 네댓시간 혼자 애를 보는 것과 아들이 깨어 활동하는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 감당한다는 것, 그리고 이 일이 간헐적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차이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식사도 서서 할 수밖에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아기 엄마들은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멀쩡한 식탁을 두고서.

아내 복직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대표적인 게 식사다. 둘일 때는 누가 하나 먼저 먹은 뒤 교대해주는 방식으로 여유롭게, 앉아서 먹었지만(이마저도 딱하게 보는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이제 선 채로 아들 눈치를 보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변했다. 눈칫밥도 이런 눈칫밥이 없다. 접시에다 밥을 올리고 그 옆에다 뷔페에서처럼 김치와 달걀 후라이 등의 반찬을 놓고 먹는다. 재우고 먹지, 뭐 이렇게까지 해나 되나 싶지만 이유가 있다.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낮잠 시간엔 각종 집안일을 수행해야 하고, 온 집을 휘젓고 다니는 아들이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모서리에 부딪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기동성 있는 밥상이 필요하다.(이걸 ‘친정 엄마’가 본다면…. 엄마! 이 경우 설거지거리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장점이 있어요!)

혼자 애를 보다 보니 난감한 일도 종종 생긴다. 잠이 오거나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난 때인지 엄마라고 부르는 이 아빠한테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는데, 이때 아빠의 몸에서‘신호’가 오는 경우다. 실제로 아들은 안고 일을 본 적도 있다.(더 자세하게 써서 좋을 것 없을 것 같다. 그냥 그렇게 알아두시고, 상상하지 마시라.)

아들 뒤치다꺼리는 말할 것도 없다. 11개월에 걸음을 떼기 시작한 아들은 일찍 걷기 시작했다는 주변의 평가를 받는데, 그 애비 자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파헤치고 뒤지고 뒤엎는 등 호전적이다. 기본적인 파괴력에다 기동성까지 갖췄으니 이 고독한 싸움의 정도는 일반 직장인 아빠들이 아는 것 이상이다. ‘육아휴직 한다고? 애 보는 게 제일 힘들던데!’ 하던 친구의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 것도 이 때다.

아들보다 한 살 많은 딸을 가진 타사 동료와 찾은 동네 한 백화점의 키즈랜드. 아들을 풀어 놓고 좀 쉴 요량으로 찾은 곳이지만 형, 누나들에 치이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아들에 매여 식사는커녕 청소, 설거지도 하지 못한 채 몽롱한 정신으로 땅거미를 맞으면 문자 하나 보내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길지도 않다.‘언제 마쳐?’ ‘집에 언제 와?’하지만 보통은 참는다. 1년여 만에 일을 다시 시작한 아내는 파김치가 돼 귀가하기 일쑤고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와 풀어놓는데, 여기에다 대놓고 빨리 와라, 좀 더 일찍 오지 그랬냐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 ‘내가 어디 놀다 오느냐’는 타박이 쏟아질 게 뻔하고, 귀가 시간을 놓고 아내와 대립각을 세웠다간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가능하면 아내가 최상의 컨디션인 아들을 맞게 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 낮에 아무리 헝클어져 있었더라도 아내의 귀가까지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마치고(이건 기본이다) 아들에게 저녁을 먹이고 목욕까지 시켜서 아들이 하루 중 가장 예쁜 모습을 하고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래야 아내가 피로를 쉬 풀고 이후 시간부터 이튿날 아침 아내가 출근하기까지 아빠가 육아에서 해방되는 방법인 것도 터득했다. 역사를 쓰는 일에 비할 바 아니겠지만 육아 고충을 풀어놓는 일도 대양을 마시고 한줌의 오줌을 싸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育兒)는 나를 키우는, 육아(育我)이기도 하다. msj@hk.co.kr

|||

관련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