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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스러진 패자부활의 꿈

입력
2014.09.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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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의 야구인생을 응축한 한마디를 꼽자면 절실함이 아닐까 싶다. 좌우명 ‘일구이무(一球二無ㆍ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에도 매 순간 전력을 다하는 그의 야구철학이 녹아있다. SK를 2007~2010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켜 세 차례 우승컵을 거머쥐는 위업을 세웠지만, 그는 만년 꼴찌이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1996년 리그 2위에 올려 놓았던 때를 감독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꼽는다. “팀 전력도, 구단의 지원도 형편없었던 최악의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 2011년 말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프로구단에서 탈락한 선수들을 모아 출범한 국내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맡으면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김성근식 야구는 더 독해졌다. 성과는 놀라웠다. 데뷔 첫 해 퓨처스리그(2군) 교류경기에서 0.488의 승률을 올렸고, 지난해 27승 6무 15패(0.643), 올해 43승 12무 25패(0.632)를 기록했다. 더불어 3년간 선수 22명과 코치 4명, 프런트 직원 1명을 한국야구위원회(KBO) 소속 프로구단에 진출시켰다.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 2012년 줄지어 방문한 여야 대선 후보들의 칭송처럼 ‘패자부활의 상징’으로 통하던 고양 원더스가 11일 해체를 선언했다. 한 해 30억원을 쏟아 부으며 구단을 키워 왔지만 창단을 제의했던 KBO가 퓨처스리그 정식 합류 약속을 지키지 않아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이유였다. 허민 구단주가 “우리는 결혼한 사이”라며 무한한 신뢰를 보냈던 김 감독이 올해 2년 계약만료 후에도 구단에 남겠다며 막판까지 호소했지만 허사였다고 한다. 김 감독은 이날 선수단 미팅에서 “작별의 시간이 너무 빨리 왔다”며 눈시울을 붉혔고, 졸지에 열정을 불 태울 기회의 무대를 잃은 선수들은 눈물을 쏟았다.

▦ “프로팀밖에는 갈 데가 없어 야구선수 실업자가 한해 오백, 육백 명씩 나오는데 다들 손 놓고 있어요. …야구뿐인가요? 우리 사회 전체가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가 부족해요.” 지난해 3월 인터뷰 때 김 감독이 한 말이다. 그가 좋아한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서글프게 떠올랐다.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

이희정 논설위원 jaylee@hk.co.kr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1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리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1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리며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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