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5. 13개월 아들과 둘만 간 고향길

이곳은 내가 나고 자란 고향. ‘애 보려고 휴직했습니다’라고 이야기 할 경우 집안에 일어날 파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장손이었기에, 육아휴직 계획을 세우고 이행하기까지 가장 많은 공을 들인 곳이다.

좀 부풀려서 이야기하면 이 곳은 어떤 의미에서 TV드라마 ‘육남매’에서 나옴 직한 그런 동네다. 어미가 막내를 업은 채 한 손으로 애 하나를 붙들고, 다른 손으론 보따리를 들고 힘겹게 걸어가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 아비는 이들이 마치 남인양 저만치 떨어져서 가는 풍경이 연출 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만큼 육아를 비롯한 집안 일과 바깥일 구분이 명확한 곳이다. (일마 이거 지금 무신 소리해샀노, 하는 반응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고향 친구들이 적지 않다.)

아들과 고향 내려가는 비행기에서 본 바깥 풍경. 착륙을 방해한 안개는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는 듯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랑 떨어지는 여행, 아빠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 공을 들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스마트폰으로 카톡까지 하는, 나름 ‘통하는’ 어른들이지만 집안 분위기 문제나 주변에서 무슨 말이라도 나오면 이유 없이 싫어지고, 뭘 하더라도 그렇게 뜻을 거슬러선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건 없었다. 들였다는 공 대부분은 육아휴직 제도에 대해 설명드리는 것이었다. 이런 제도가 있고, 아빠가 애를 키우면 손주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며느리가 일을 나가면 국가 경제에 대단한 도움이 되고, 아빠 육아는 앞으로 대세가 될 텐데 당신 아들이 조금 앞서가는 것뿐이다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긍하지 못하실 땐 사건사고 기사까지 팔았다. 어떤 어린집에서 애가 맞는 동영상 뉴스 못 보셨냐, 그래서 말문 트일 때까지는 부모가 키우는 게 좋은데 그게 안되면 집에 ‘이모’를 들여야 한다. 그 비용이나 내 월급이나 같다. 그 비용 대실 수 있나. 그러니 아들이 직접 보는 게 낫지 않겠냐 하는 협박조 이야기들이었다.

이 과정이 새삼스럽게 반추된 건 귀성길에 13개월 된 아들과 단 둘이 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이 엄마와 떨어져 밤을 보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인터넷에선 명절을 앞두고 며느리용 깁스붕대가 인기를 끌었다고 하던데, 최근 복직한 아내는 추석 연휴 당직에 당첨(?)됐다.) 특히, 엄마와 떨어져 있을 1주일 동안(육아휴직이니까 가능한 거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중간에 서울로 돌아간다느니 하는 소릴 했다가는 육아휴직자 체면이 적지 않게 구겨질 터였다.

아들이 엄마를 찾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귀경을 서두르게 한 문제의 영상통화 장면. 핸드폰 속 아내가 아들을 수도 없이 불렀지만 아들은 옆에 앉은 사촌 누나에게만 관심을 보였다.

엄마 없는 아들을 더 야무지게 돌보는 수밖에 없었다. 식사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정도로 이어지는 다과상과 주안상.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내야 했다. 돌봐줄 가족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그 수에 비례하는 에너지로 휘젓고 다녔다. 한눈 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술상으로 돌진하는 아들을 견제하며 자리를 지키자니 땀까지 났다. 땀인지 뒤집어 쓴 술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니 아들의 할아버지는 한 마디 하신다. “허허허허허, 요점 젊은 애비덜도 직접 아 한번씩 키아바야 대. 그래야 아 보는 기 얼매나 힘던긴지 알제.”

가족신문이 있다면 이건 두말 없이 1면 톱감이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이는 곧 나의 육아휴직이 온 집안에 정당화(?) 됐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기뻤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축축한 목덜미를 휘감고 지나갔다. 이 청량감도 잠시, 이 머리는 또 딴 생각을 했다. ‘네 놈 키워준 고생 몰라주는 이 불효자야, 너도 맛 좀 봐라’하는 소리로 들렸다.

아버지로부터 찬사(?)를 들을 정도로 아들에게 공을 들인 덕분인지 아들은 며칠째 엄마를 찾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에게도 잘 안기고, 또래 사촌들과도 잘 어울려 논다. 잠도 잘 잔다. 밤에도 혼자 이불 위를 뒹굴다 자거나 살짝 안아 흔들어주면 잠드는 수준이다. 간혹 ‘엄마, 엄마’ 소리(이건 아빠를 부르는 소리이기도 하다)를 내지만 그 뿐이다. 징징대지 않는다. 엄마 젖도 찾지 않는다.(아내는 자연스럽게 13개월 만에 수유를 끊었다.) 3개월이 다 돼 가는 육아휴직 덕이 아닌가 싶다.

힘은 들지만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모든 게 평온하다.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건 좀 전 아내와의 영상통화뿐이다. 아들을 무수히 불러도 관심조차 보이지 않자 아내는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 찰라 눈가로 아내의 손이 올라갔는데, 그 장면이 마음에 걸린다. 지나는 자동차 소리에 괜스레 눈물이 난다. 내일 아침 챙겨서 올라가봐야겠다.

msj@hk.co.kr

|||

관련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