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고] 2. 영화 '해적' 뜯어보기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흥행 늦바람을 타고 있다. 역대 최고 흥행영화로 등극한 ‘명량’의 빛에 가렸으나 31일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여름 흥행작의 면모를 뒤늦게 드러냈다. 개봉 초기 “흥행이 산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왔으나 코미디를 원료로 흥행 질주를 하고 있다.

▦라제기(라)=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굴까.

▦고경석(고)=주인공은 유해진이다.

▦라=동감! 영화포스터만 봤을 때는 손예진과 김남길을 앞세운 영화인데 두 배우는 얼굴마담역할만 해. 손예진, 김남길이 일종의 바지사장이고 진짜 주인은 유해진인 느낌이다.

▦고=정말 유해진이 없었으면 지금까지 관객 수의 절반 정도가 덜 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라=‘해적’의 기자 시사회 날부터 몇몇 기자들이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나. 관객 반절 정도는 유해진이 만들 것이라고. ‘해적’ 관객이 700만 정도 들었으니까 350만 정도는 유해진이 덕분에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해적’이 마케팅비를 포함한 총제작비가 170억원 들었다는 것이 의아하다. 화려한 비주얼과 멋진 스펙터클이 아닌 유해진의 개인기에 의존한 영화다.

▦고=‘해적’은 노골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 한국판을 표방하고 있는 영화다. 캐릭터도 비슷하다. 하지만 주인공 조니 뎁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남길과 유해진, 둘로 나누지 않았을까. 주인공이 해야 할 일은 김남길이 하고 웃기는 건 유해진이 하는 식으로. 허당 캐릭터로 보면 두 인물이 겹치는 지점이 많은데 유해진이 산적과 해적을 오가는 인물이어서 거의 주연처럼 활약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라=제목에 담긴 ‘해적’과 ‘바다로 간 산적’ 두 집단에 대한 이야기다. 제목에 이미 유해진의 활약상이 암시돼 있는 것 같다.

▦고=산으로 간 해적이 주인공이 됐다. 산으로 갔다가 바다로 돌아온 해적이기도 하고.

▦라=그렇다. 유해진이 주인공이라는 느낌의 제목일수도 있다. 손예진은 해적이고, 바다로 간 산적은 김남길인데 해적과 바다로 간 산적 양쪽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유해진이다. 제목에 유해진의 영화라는 게 복선이 깔린 듯한 느낌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한국판이라고 표방을 하기도 했고 기사도 많이 나오긴 했지만 좀 민망한 표현 아닌가. 볼거리가 그리 화려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국판이기 때문에 볼거리가 적은 건가, 한국판에 방점이 찍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좀 든다.

|||

영화 '해적'에서 발군의 연기를 선보인 유해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고=컴퓨터그래픽(CG)에 쓴 비용의 상당 부분을 고래 만드는 데 썼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고래 CG가 굉장히 좋다는 평이 많았다.

▦라=CG는 덱스터라는 회사가 담당했다. 덱스터는 김용화 감독이 지난해 ‘미스터 고’의 CG 작업을 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지난해 고릴라로 크게 망했던 덱스터가 올해 고래로 살아나는 분위기다. 고래 CG는 좋은데 다른 장면의 CG는 좀 조잡하다는 생각도 든다.

▦고=고래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게 아닐까. 해전 장면이 ‘명량’에 비하면 왜소해 보이는 이유가.

▦라=마케팅비를 제외한 순제작비는 ‘명량’과 ‘해적’이 큰 차이가 없는데 볼거리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 ‘명량’은 1시간 동안의 해전 장면을 통해 관객들한테 ‘야 그래도 이런 전쟁 영화를 봤다’라는 느낌을 확실하게 전해 주는데 ‘해적’은 세트에서 이루어지는 장난스러운 액션 장면이란 느낌이 강하다. 볼거리가 초라하니 결국 관객은 유해진의 웃음거리들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 것 같다.

▦고=배와 관련해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산적들이 조그만 배를 타고 상어에 끌려가는 장면이다.

▦라=그 장면이 바다를 배경으로 우스꽝스러운 볼거리를 가장 잘 보여줬다. 그것 외에는 각 캐릭터들의 대사나 표정연기, 상황설정으로 웃긴다. 결국에 이렇게까지 돈을 들일 필요가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고=고래만 뺐어도 훨씬 적은 비용으로 찍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라=고래가 굳이 국새를 삼킬 필요가 있었을까.

▦고=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도 있었을 테고 아니면 장면을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고릴라 vs 고래 CG 영상 비교

|||

▦라=이 영화의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가 천성일씨라는 점도 흥미롭다. 영화 ‘7급 공무원’과 드라마 ‘추노’를 통해 드러났던 천성일씨의 재주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좋다. 대사도 맛깔스럽고. 천성일씨는 은둔형 작가라 언론과 만나려고 하지도 않으니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대사만큼 재밌는 사람인지,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이나 음악은 무엇인지 많이 궁금하다.

▦고=첫 제작 영화인 ‘7급 공무원’ 때만 해도 안 그랬다. 전혀 은둔형이 아니었는데 ‘추노’ 이후 바뀐 것 같다.

▦라=제작을 하면서 시나리오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경우는 충무로든 여의도든 매우 드물다. ‘해적’의 700만 정도 흥행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나.

▦고=개봉 전엔 ‘명량’보다 잘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여름시장 크기와 이 영화의 오락적 측면을 생각하면 800만 이상은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라=‘명량’이 한 200만 정도 덜 들었으면 그 관객을 거의 그대로 ‘해적’이 가져 가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한 900만명은 됐을 것이다. ‘명량’ 같은 강적만 없었다면 1,000만도 충분히 가능했을지 모른다. ‘과속스캔들’ 같은 영화도 800만명을 넘었으니까.

▦고=‘해적’을 본 뒤 처음 떠오른 게 차태현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였다. 내용이 비슷하다기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사에서는 잘 쓰지 않는 건데 ‘롯데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련미는 떨어지지만 인공조미료 같은 재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까.

▦라=MSG를 많이 넣은 영화 같다. 그런 음식이 당길 때가 있다. 여름 시장 규모가 워낙 커졌으니까 ‘명량’이라는 커다란 암초만 없었다면 ‘해적’이 1,000만도 가능한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물론 영화의 완성도라든가, 배우들의 중량감을 따져보면 누구나 1,000만을 예측할 수 있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170억원을 들인 블록버스터이긴 하지만 배우가 좀 중량감이 떨어진다. 특히 김남길은 주인공으로서 좀 약한 느낌이다.

▦고=그래도 김남길이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라=배우의 이름값이 중요한 여름시장에서는 좀 밀리는 감이 있지 않은가.

▦고=하정우나 강동원, 최민식, 김윤석에 비하면 밀리긴 밀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남길이 ‘해적’에 출연한 건 굉장히 잘한 일 같다. 모 감독이 “이런 푼수가 또 없다”고 할 정도로 평소 장난기도 많고 푼수 같은 성격인데 그걸 잘 표현해냈다. 지금껏 출연한 작품 중 실제 모습이랑 가장 근접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라=그 전에는 딱딱하고 차가운 남자, 나쁜 남자 이런 식의 이미지가 박혀 있었다. 코미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얼굴이긴 한데도 말이야. 이제 ‘해적’을 통해 확실하게 연기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게 된 것 같다.

▦고=오히려 손예진의 연기가 너무 딱딱해서 김남길의 연기를 못 받쳐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라=몇몇 기사들이 새로운 액션 스타의 탄생이라 표현했는데 좀 과도한 것 같다. 하지원이 ‘7광구’나 ‘코리아’에서 격한 몸짓을 보여줄 때는 몸으로 정말 역할을 소화한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한때 하지원의 별명이 충무로에서 ‘협녀’라고 통할 정도였다. 하지원이 의리가 있는 배우로 소문이 나기도 했고 액션도 확실하게 해내니까 협녀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원의 액션 연기와 비교하면 손예진의 액션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해적’이 스펙터클과 액션을 내세웠다고 하나 눈에 두드러지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는 거 같다. 손예진이 잘 못한 건지, 감독이 손예진의 액션을 눈에 띄게 못 잡아 준건지는 좀 따져봐야 하지만 손예진이 액션 배우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건 좀 오버다.

▦고=액션이나 어드벤처 장르 영화에선 몸의 움직임이 주는 활기가 있는데 손예진에겐 그 느낌이 부족하다. 손예진이 줄타고 칼을 휘두를 때 몸이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라=약간 흉내만 내는 액션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김남길도 마찬가지다. 전반적으로 모든 배우들의 액션 강도가 세게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가 해양 액션 코믹 블록버스터가 아닌 그냥 코믹 블록버스터만 된 게 아닌가. 해양과 액션이 빠졌음에도 이 정도 관객이 나온 건 코미디가 제대로 통했다고 봐야 한다. 제작사나 투자 배급사가 원했던 건 장쾌한 볼거리가 코미디와 섞이는 것이었을 텐데 그런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영화다. 제작사의 의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도 시장에서 환영 받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고=독특한 영화이기는 하다. 이야기 자체의 타깃도 모호하고. 국새를 찾아 나라의 권위를 되찾는다는 것도 아니고, 산적이나 해적이 국새를 찾아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김남길이 복수하는 영화도 아니고 김남길과 손예진의 로맨스가 중요한 영화도 아니다. 재미있게 흘러가긴 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대체 이 영화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린다.

▦라=결국 이 영화의 힘은 유해진이라는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이야기보다는 유해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 열광하는 것 같다. ‘개그콘서트’ 같은 영화라고 할까. 사람들은 ‘개콘’을 죽 보면서 모든 코너가 다 재미있기를 바라진 않는다. 모든 코너가 재미있으면 더 좋겠지만 재미없는 코너는 그냥 넘어가고 재미있는 코너에 집중하는 시청 방식을 보인다. ‘해적’도 그런 면이 강하다.

▦고=유해진은 정말 디테일이 뛰어난 배우다. ‘타짜-신의 손’을 보면서도 느낀 건데 이 분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조금씩 다른 캐릭터를 구현하는 재주가 있다. ‘이끼’에선 정말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실제 존재할 거 같다고 믿게 된다.

▦라=기본 바탕은 코믹 연기인데 감초 식으로 소비되지는 않는다. 외모가 빼어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감초 배우로 전락할 수 있는데도 절대 밀리지 않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다.

▦고=진정한 ‘씬 스틸러’가 아닌가. 자기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확실히 맡은 바를 다하는 배우다.

▦라=반복된 듯한 캐릭터이면서도 절대 반복되지 않는 캐릭터다.

▦고=함께 연기하는 배우를 작품에 더 흡착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는 것 같다.

▦라=오랫동안 여러 코믹 배우들, 감초형 배우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렇게 까지 주조연급으로 살아남은 경우는 유해진이 유일하지 않나. 그것도 10년 넘게.

▦고=독보적이다. 다른 코믹 감초 조연들은 반복적인 측면이 있다. 대개 웃기는 지점도 비슷하고 그래서 몇 년 지나면 관객들도 질린다.

▦라=유해진은 이번에는 어떻게 웃겨줄까, 이번에는 어떻게 웃음기가 사라진 연기를 보여줄까를 생각하는 것 같다. 어쨌든 ‘해적’ 흥행의 요인은 결론적으로 유해진이다.

|||유해진의 명연기 영상들

|||

|||

▦고=이석훈 감독이 대중적 감각이 있는 것 같다. ‘댄싱퀸’ 같은 영화를 봐도 세련된 느낌이 없고 뻔한 얘기를 하는데도 계속 관객의 관심을 유지시키며 재미를 느끼게 하는 재주가 있다.

▦라=엄청 웃기게 영화를 만드는 코미디 전문 감독은 아닌데도 꾸준하게 웃긴다. ‘방과 후 옥상’ 때는 정말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가장 재기 발랄했던 영화였던 것 같다. 이 감독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웃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안다. 배우 연기 지시라든가 카메라, 조명이라든가 이런 기술적인 면에서는 빼어난 능력을 가진 감독은 아닌데 어떤 대사를 어떤 상황에서 쓰면 사람들이 웃을 것이란 걸 확실히 알고 있다. 고급스럽진 않아도 천박하지 않게 웃긴다.

▦고=웃기는 건 엄청난 재능이다. 울리는 것보다 웃기는 게 더 어렵다는 감독도 있는 걸 보면 영화로 누군가를 웃기는 게 꽤 힘든 것 같다. 누군가는 이 영화 보고 나서 웃기는 거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더라. 아주 억지스럽고 유치하지만 않다면 계속 웃겨주는 영화에 관객은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석훈 감독의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영화들

|||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고경석기자 kave@hk.co.kr

관련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