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임의 궁금하군] (1) GOP

군 입대를 앞둔 예비 장병들 사이에서 회자된다는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전생에 대죄를 7번 지은 신병들이 가는 곳이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 칠성부대인데 죄를 한 번 더 지은 신병들은 그 중에서도 전군 통틀어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인 8연대 GOP(General Outpostㆍ일반전초)대대로 배치를 받는다는 겁니다. GOP 근무가 오죽 ‘빡셌으면’ 전생에 대역죄인들이 가는 부대로 인식되고 있는 걸까요.

얼마 전 이 악명 높은 7사단 8연대 GOP대대에 다녀왔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지난 6월 21일 발생한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GOP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방부 출입 일주일 만에 사건이 터진 지라 맨땅에 헤딩했던 저였기에 GOP가 어떤 곳인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국방부에 갓 출입한 초보기자임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지난해 12월 말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 GOP초소에서 장병들이 철책을 따라 야간 경계근무를 서는 모습. GOP 근무는 낮이나 밤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년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비무장지대 철책 바로 뒤쪽이 GOP, 철책 안은 GP

간단히 GOP 설명부터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휴전선(군사분계선)이 생기고 또 이 휴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폭 2㎞의 비무장지대(DMZ)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이 비무장지대 경계에 철책이 세워지는데 철책 바로 뒤쪽이 GOP입니다. 이 철책을 지키는 임무가 GOP부대에 주어지는 것이고요. 철책 안의 비무장지대에도 우리 군의 초소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GP(Guard Postㆍ전방초소)입니다. 2005년 8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연천 28사단 총기난사 사건이 GP에서 일어났죠. 생소한 군대 용어들이 가슴 아픈 사건을 통해 기억된다는 건 뭔가 서글픈 일입니다. 북한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병사들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삼엄한 경계 근무(GP는 감시 업무)를 서는 만큼,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이곳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사건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것 또한 서글픈 현실이고요.

● 배우 원빈을 제대시킨 네발계단… “밤낮 바뀌는 게 가장 힘들어”

GOP를 방문했을 때 가장 경악했던 것이 바로 험난한 경사와 수많은 계단이었습니다. 강원 화천의 산지가 험준한 만큼 GOP 초소가 높은 고지에 설치된 탓에 병사들은 산 능선을 따라 하루에도 수천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근무 초소를 오갑니다. 63빌딩 계단이 1,250여개인데 이곳 병사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63빌딩을 1층부터 63층까지 매일 4차례 왕복하는 셈입니다. 이 때문에 병사 대부분이 극심한 무릎 통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특히 70도가 넘는 급경사 계단은 두 발로 오르기 어려워 두 손까지 합해야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네발계단’이라고 불리는데요, 배우 원빈씨가 이곳에서 2개월 근무한 뒤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의병제대했습니다. 원빈씨를 전역시킨 무시무시한 계단이라고 할 수 있죠.

여름이라 그런지 GOP 일대에 수풀이 무성했는데요, 저 같은 방문자 입장에선 녹음이 짙은 수풀은 보기 좋은 경관이지만 군 입장에선 적의 침투를 알아차리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주변에 하천이 많은 탓에 자주 등장하는 안개 역시 장애요소이고요. 그런 설명을 듣고 나니 재작년 ‘노크귀순 사건’ 에서 논란이 된 ‘적의 접근을 바로 알아차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군의 해명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긴 했습니다.

GO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의 가장 큰 고통은 ‘밤과 낮이 바뀌는 생활’입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근무를 해야 하는 탓에 보통 1주일 간격으로 밤낮이 바뀝니다. 이 때문에 생체리듬이 엉망이 된 병사들은 극도의 피로를 호소합니다. 제가 병사들이 생활하는 소초를 방문한 대낮에도 전날 야간 근무를 했던 병사들은 취침 중이었습니다. 최전방 근무를 서는 만큼 일반 병사들에게도 실탄 수십여발과 수류탄이 지급되고 타 부대와 달리 외출, 외박, 면회가 불가능한 것도 병사들의 긴장감과 고립감을 가중시키는데요, 다만 최근 병영문화개선 대책으로 GOP 면회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GO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일종의 생명수당으로 타부대 병사보다 한 달에 3만1,500원을 더 받는답니다. 하루 1,050원 꼴이지요.

경기 연천 무적태풍부대 GOP 장병들이 진지점령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북한을 코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GOP 부대원들은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제2의 임 병장’ 막는 방법은 없나

“관심병사가 실탄까지 받고 GOP에서 근무해도 되는 거야?”

22사단 GOP 총기난사 사건 이후 주변 지인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사건을 일으킨 임 병장이 B급 관심병사였기 때문입니다. 군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저출산, 군 복무기간 단축 등으로 병력자원이 줄어들다보니 A급 관심병사를 제외한 BㆍC급 관심병사는 어쩔 수 없이 GOP에 투입시킨다는 겁니다. 국방부가 올 초 병력을 현재 63만3,000(육군 49만8000명)에서 2022년까지 52만2,000명(38만7000명으로 )으로 11만1000명 줄이는 내용의 국방개혁 기본계획까지 발표했는데 이대로 가만 있어도 되는 걸까요. 국방부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GOP 과학화 경계시스템’입니다. 현재 병사들이 육안으로 감시하고 있는 휴전선의 경계를 중거리 카메라 등 최신 감시장비와 철책에 설치하는 감지장비를 활용하는 체제로 바꾸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이렇게 되면 경계 병력의 20% 정도를 줄이고 병사들의 피로감도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려봅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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