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습 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2주를 넘긴 지난 5월 26일, 경기 고양시의 멀티플렉스가 위치한 버스터미널에서 큰 화재가 나 사람들이 다쳤다. 사회부는 곧바로 기획기사를 준비했고 이날 밤 화재가 발생시 안전관리 조치가 미흡한 멀티플렉스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무 생각없이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고, ‘운 좋게도’ 처음 도착한 멀티플렉스에서 1층 비상구 한 곳이 잠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튿날 해명을 듣기 위해 영화관을 다시 찾았다. 핑계 없고 사연 없는 잘못이란 없는 법. 하지만 이 곳은 유난히 그 핑계가 복잡했고 사연도 오래됐다. 영화관 매니저는 무려 이 영화관이 관할 소방서와 함께 ‘재난 시범 탈출훈련’까지 했노라고 자랑했다. 비상구에 대해 질문하자 “당시 훈련을 하면서 문이 잠겨있기에 열어달라고 당부해 뒀고 해결이 된 줄 알았다”고 했다.

건물 시설과에서는 “늘 열어두라고 말을 하지만, 상가 운영업체가 운영하는 경비실에서 그 문을 관리하며 새벽에는 항상 문을 닫는다”며 “우리는 상가와 멀티플렉스 외부의 시설, 즉 주차장과 기계실 등 기술적인 영역만 관리하도록 외주를 받은 처지라 손을 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또 보안실장은 “우리가 그 문을 잠그긴 하지만 우리 잘못이 아니다. 쓰지 말라는 문을 왜 비상구로 쓰나”며 불평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보안실장도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상가 운영업체가 부도가 난 이후 텅 빈 상가를 소수 인원으로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일하며 지키는데, 그 비상구 앞에는 이 건물의 유일한 상점이 입주하고 있어 함부로 문을 열어두기 곤란했던 것이다. 불과 3명의 인원으로 8층짜리 건물을 지키다 보니 열어두고 밤새 순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건 건물주 측에서 상점 배치를 조정해 주든지, 담당인원을 자기들이 고용을 더 하든지, 비상구 하나를 폐쇄하든지 조율을 해줘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우리 잘못보단 그 쪽 잘못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오늘 일기의 주인공인 바로 그 잠긴 문. 사실 비상계단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기에 급히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할 때나 취재 중 잠시 쉴 때 애용하는 장소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장소도 뭔가 문제가 없나 유심히 보게 된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게 누구 잘못이긴 한 걸까? 멀티플렉스는 끝까지 확인을 안 했으니 잘못이고, 상가 관리업주는 부도를 내서 잘못이고, 이 조그만 상가 건물에 관리를 담당하는 업체가 3곳이나 돼서 저마다 책임을 지지 않고(또는 못하고) 있는 난처한 상황을 만든 건물주와 그걸 당연시하게 만든 분업화된 사회경제적 구조가 잘못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핑핑 돌았다. 나는 단지 문이 왜 안 열렸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향해 불평했고 나는 심판할 권리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기자님, 저희가 모여서 일단 협의를 하게 됐으니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러 와 주시죠. 뭐라도 결정이 날 것 같은데 확인하고 가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상가 이 곳 저 곳으로 들쑤시고 다니다 보니 그들끼리 서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날 만난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을 경비실에서 다시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실질적으로 결론이 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들은 각 업체의 업주가 아니라 관리책임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셋은 공동으로 건물주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인원 추가고용을 하거나 관리책임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기로 합의했다.

내가 취재한 내용은 기사에는 ‘취재에 나서자 부랴부랴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한 줄로 마무리됐다(▶관련기사 보기). 문 하나를 열고 기사에 한 줄, 이게 내가 한국일보 견습으로 들어와서 대략 하루 정도를 써서 간신히 처음 한 일이었다. 이 날은 내가 다른 문을 열었던 날이기도 하다. 처음 모르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받았고, ‘기자’라 나를 부른 사람이 처음 생겼고, 그래선 안 되겠지만 훗날 그 영화관에서 자정 무렵에 화재사고가 났을 때 문고리를 잡고 당황할 누군가가 나타날 일이 없어졌다.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살면서 늘 해왔던 질문이다. 졸업을 하고 나니 나에게 남은 건 글 읽고 말하고 쓰는 조그만 재능,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별로 대단치 못한 관심뿐이었다. 견습을 시작할 때도 그리고 지금도 당당히 나를 기자라고 부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나는 그 날, 살아온 스물 일곱 해 동안, 그리고 경찰서와 학교와 법원과 사고 현장을 헤맨 2주간의 견습 생활 동안 해왔던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니라, 나의 기자란 직업이 말을 했고, 사람들을 움직였고, 그렇게 문은 열렸다. 나의 문도 열렸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래도 한국일보 기자라 써있는 명함의 힘을 빌어서 아주 조금이나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 겨우 첫 문을 열었으니, 앞으로는 더 많은 문을 열자고. 닫히려는 문이 있으면 억지로 붙잡고 늘어지고, 잠긴 문이 있으면 두드리고, 관리책임자 번호를 찾고, 옆 문이라도 열자고. 그러다 보면 모든 문이 열리고, 세상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견습 수첩]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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