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돌아온 블루노트의 뮤지션 송영주

※ 연재를 앞둔 마음은 언제나 버겁습니다. 아, 저지르고야 말았구나… 하는, 기대 반 후회 반의 정서 불안 상태라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번은 조금 다른 듯합니다. 재즈라는 뜨거운 현장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감 때문입니다.

재즈에서 블루노트(BlueNote)란 말은 정통과 최고에 대한 열망을 온축한다. 원래는 레이블 이름이었으나 이제는 그 이름을 차용한 재즈 클럽의 옥호로도 유명하다.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41)는 한국의 재즈 뮤지션 중 뉴욕에 있는 재즈 클럽인 블루노트와 가장 깊은 연관을 가진 사람이다. 지난해 6월 콧대 높은 뉴욕 블루노트에서 한국인 최초의 단독 공연을 했다. 냉정히 따져 그 사실이 예술적 성취를 정확히 반영하는 척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서 재즈의 아우라가 짙게 느껴지는 것은 선입견 탓일까.

28, 29일 서울 서교동 홍대 앞의 폼텍웍스홀에서 단독 공연을 하는 그녀를 불러놓고 블루노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뜬금없다 싶겠지만 당연한 통과의례일지 모른다. “블루노트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요? 상징성이겠죠.” 거장 허비 행콕도, 칙 코리아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을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다는 말이다.

뉴욕 블루노트의 시간은 무엇일까. 버클리 음대와 맨해튼 음대(석사)에서 재즈 유학을 하고 2004년 귀국한 뒤 한국에만 있었더라면 그녀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로 연주자로서 확신이 선 그녀는 2010년 다시 미국 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 CD를 주며 맨투맨으로 만났다.” 뉴욕 맨해튼 7번가의 재즈 클럽 스몰스, 키타노, 코르멜라세인트, 세이브 시프터 등지를 목표 삼아 그녀는 꾸준히 자신을 알렸다. 모두 한국인 주자는 보기 힘든 곳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무대에 오를 때면 한인 교포들이 몰려왔다.

재즈 피아니스트 송영주씨.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그녀는 지금 한국으로 또다시 터전을 바꿨다. 2월 미국 생활을 훌훌 털고 완전 귀국한 것이다. 꼭 1년 전 아버지가 루게릭병으로 세상을 뜬 데다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는 곳에서 지내다 보니 고독감이 엄습했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 짓던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자기 전 기도 하는데 어디선가 “그 동안 힘 들었어, 수고했어”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미국인들도 제 때 집세 못 내고 어렵게 생활하는 모습을 봐온 터에, 어디선가 들려오던 그 목소리에 급기야 그녀는 목놓아 울었다.“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가를 자문했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귀국하자마자 서울신학대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2년 전부터 교수 제안이 오던 데였다. 3월부터 서울신학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있으면서 전공 레슨, 앙상블, 즉흥 연주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 6월 마포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고국의 품에 안긴 그녀는 “한국에 있다는 것은 마음 편하게 돌아다닌다는 심리 상태를 의미해요”라고 말한다.

내년부터 프랑스 등지의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할 여유도 생겼다. 보다 자세한 진술이다. “제 음악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됐어요. 테크닉, 난해한 화성 등 과시적 작곡에 빠져 있지 않았나 하는 반성과 함께.” 재즈란 자기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는 확신과 동시에 타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어떤 욕망이 결국 자기 음악을 만들게 한다는, 어떻게 보면 원칙적인 깨달음이기도 했다. 재즈의 진수를 맛본 사람으로서의 책임감도 그를 추궁했다.“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즉흥과 변주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의 나를 보이고 싶은 거죠.”

폼텍웍스홀 콘서트는 뉴욕에서 지내며 쓴 곡들을 중심으로 한다. “뉴욕이라는 치열한 곳에서 살며 느낀 감정에서 벗어나 내면을 응시하며 차분한 마음으로 쓴 곡들이죠.” 무엇보다 자신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확신을 주는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 만드는 무대라는 기대감이 그녀를 들뜨게 한다.

겨울에는 미국에서 10주년 기념 앨범도 낸다. 옛 친구들과 함께 만들 그 앨범은 1~6집의 작품을 뽑아 만드는 베스트 앨범으로, 8~9할은 원곡에서 탈피해 즉흥연주로 할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피아노 트리오(피아노, 베이스, 드럼)를 하되 색소폰과 트럼펫도 넣을 것이라니 거의 환골탈태다.

한국에 온 그녀가 느낀 것은 좋은 연주자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즐거운 고민이다. 그러나 재즈맨들이 사회와 소통할 재즈 클럽이 줄어드는 데다 유학파는 포화상태다. 보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재즈 페스티벌은 늘어 해외 뮤지션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아닌게아니라 한국에 있다는 게 정체성의 위기로 다가올 때도 있다. 아방가르드 재즈나 프리 재즈의 강렬한 경험을 한국에서 맛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녀는 버클리에서 전등을 완전히 끈 채 귀에만 의지해 진짜 프리 재즈를 연주한 경험이 있다. 그런 식으로 맛만 본 정도지만 그 유혹은 강렬하다. 이제는 코드나 악보가 정해진 음악에서도 프리의 정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 싶은 자신감이 슬슬 생기고 있다니 고향이 덤으로 준 선물일까.

유리알처럼 명징한 그녀의 재즈는, 말을 바꾸면 차갑다는 것과도 통한다. 사실 지금껏 송영주 사운드라면 뉴욕 재즈의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반전을 시도한다. 아니 그것은 숨겨진 내면일지도 모른다. “양평 양수리 출신인 저는 시골의 수수하고 편안한 음악이 좋아요. 제 음악에서 위로, 감동, 눈물이 느껴진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참으로 감사하죠.”

평균치 한국 사람들과의 정서적 유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2007년 이래 저는 가수 심수봉의 재즈 선생이기도 해요. 이미 편곡도 두 곡 해주었죠.” 4년째 쉬고 있지만 가요 음반 작업에서 세션 연주도 가끔 했다. 윤하의 ‘빗소리’에는 작곡과 연주로 참여했고 보아의 ‘로망스’는 재즈 발라드로 편곡했으며 루시드 폴의 ‘유리정원’에서는 피아노 연주와 보컬까지 맡았고 버클리 동기인 김동률과는 ‘한여름밤의 꿈’ ‘베란다 프로젝트’에서 세션 작업을 했다.

“버클리 음대, 뉴욕대(NYU) 같은 재즈 명문에 한국 학생이 늘고 있고 실력도 향상되고 있지요. 그들에게서 반드시 세계적 뮤지션이 나올 거예요.”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뉴스A/S▶송영주의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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