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환구의 집談]

15년 전입니다. 서울 옥수동에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되는 아파트 브랜드가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사이버아파트’. 이 아파트는 초당 1메가비트(Mbps)의 전송속도를 지닌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정보통신부 인증 ‘정보통신 1호 아파트’였습니다. ‘사이비’로 잘못 불릴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름을 고집한 것은 인터넷이 잘되는 아파트란 이미지 때문이었겠지요. 옥수동을 시작으로 사이버 브랜드를 내세운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새삼 15년 전 얘기를 꺼낸 건 사이버아파트가 워낙 특이한 사례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장미, 은마, 개나리 같은 추상적인 아파트 이름이 많았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건설사 브랜드와 지명을 붙여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정 기능을 브랜드로 내세운 경우는 사이버아파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는 얘기이지요. 절전아파트, 온수아파트, 와이파이아파트 같은 상호,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런데 최근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사이버아파트의 명맥을 이을 수 있는 후보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금연아파트’입니다.

지난달 24일 건강보험공단이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 증가에 따라 담배회사에 손해배상 소송방침을 확정하는 등 흡연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역 버스 환승장에 금연구역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실 금연아파트는 그렇게 낯선 이름이 아닙니다. 서울이나 인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아파트 단지 입구나 게시판에 ‘금연아파트’라는 문구를 붙여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주민 투표를 거쳐 금연아파트 신청을 하면 인증을 해주는 식인데, 서울의 경우 2007년 도입 이래 현재 500여개 단지가 금연아파트로 지정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이미 유명무실해진 상태입니다.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면 단지 내 놀이터, 복도,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게 되지만 이를 어겨도 벌금이나 과태료 등 특별한 제재를 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집 안에서의 흡연은 가능하기 때문에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전달되는 담배 연기는 막을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주민투표를 거쳐 지정이 됐다지만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나는 동의한 적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 같은 문제들로 인해 공동주택에서의 흡연으로 인한 갈등은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층간소음만 해도 별도 규정이 마련되고 있지만 냄새로 인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지요. 급기야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일정 크기 이상의 공동주택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만큼 간접 흡연으로 인한 분쟁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새로 짓고 분양하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도 이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작년에 한 건설사는 아파트나 오피스텔을 신규 분양할 때부터 금연 건물로 만드는 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전체 단지 혹은 일부를 금연동으로 설계해 분양을 하는 것입니다. 새로 이사온 사람도 “몰랐다”고 할 수 없도록 아예 아파트 이름에 ‘금연’‘청정’’건강’같은 브랜드를 붙이거나, 화장실이나 복도 등에 흡연 감지기를 설치하는 방안도 나왔다고 합니다. 15년 전 사이버아파트가 최첨단의 이미지를 내세웠다면, 금연아파트는 간접흡연의 공포로부터 입주민들을 보호하는 무공해 친환경 이미지로 승부를 걸겠다는 것이지요.

검토 끝에 내린 결론은 ‘시기상조’였습니다. 아이를 둔 젊은 엄마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미분양을 줄일 수 있는 묘책이라는 찬성 의견도 있었지만, 흡연자들의 반발로 브랜드 이미지만 훼손될 것이란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란 말은 머지 않아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그리고 더욱 먼 훗날에는 ‘아파트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이 전설처럼 회자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새로 분양을 받으려는 아파트가 ‘금연아파트’라면, 그래도 사시겠습니까?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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